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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팀이 감빵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와 해롱이의 사랑

cultpd 2018. 1. 4. 19:37


해롱이는 애인을 만나려 목욕을 하고 금단 현상에 괴로워하면서도 감기 약도 먹지 않고 온전히 약을 끊는다.

면회 온 애인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헤롱이는 '사랑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롱이의 "사랑해"라는 말에 우리는 웃을 수 없었다.

해롱이 한양의 캐릭터가 잘 잡힌 이유도 있겠지만 배우 이규형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빛나는 조연이 많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중 참 어려운 연기를 소화해내는 것이 해롱이 이규형이다.



코미디의 기본이 되는 "니주와 오도시" 전법이다.

예능 작가들이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코미디적 기법을 잘 사용하는데 해롱이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약쟁이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는 말을 해롱이는 거침없이 내 뱉는다.


그리고 그 입으로 "사랑해"라고 진지하게 말하니 그 효과는 배가 된다.


"팽부장님 사랑해!" 해롱이의 수줍은 고백



해롱이와 함께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최고의 캐릭터가 정웅인이 맡은 팽부장이다.

팽부장 역시 평소에 거친 말로 수용자들을 다루는 교도관이지만 늘 결론은 심쿵으로 끝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이 두 캐릭터가 만나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니 그 케미는 실로 가공할 위력이다.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어떤 콘텐츠에서 게이를 이렇게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렸을까?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유한양이라는 웃기는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폭소를 터뜨리는 척 하다가 후반에 그의 진짜 모습을 잔잔하게 소개하며 게이에 대한 선입견을 무장해제 시켜 놓은 상태에서 동성애를 그린다.

이 부분은 아마 동성애 관련 콘텐츠 중 가장 거부감 없는 장면으로 오랫동안 남을 듯 하다.




그 떨리는 카운트다운 뒤.

나는 왜 동성애자의 키스에 심쿵하는가?





그 작은 신발의 움직임마저 가슴 떨리게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이것은 동성애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아무 선입견 없이 사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현상이다.


약에 중독돼서 정신없이 해롱거리는 해롱이의 진심.

그리고 누나에게 연락해 달라는 죄수를 위해 전화를 걸지만 누나가 만나기 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욕쟁이 팽부장의 진심.


슬기로운 감빵생활에는 반전의 진심이 가득하다.

죄수들을 너무 희화화하고 착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거꾸로 나는 감빵에 있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에게 있는 순수함과 서로에 대한 뜨거운 진심을 보며

감빵 밖 단절의 세상을 돌아본다.




그 의미를 주인공 제혁의 호형에서 깨닫는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는 특이하게 형이라는 호칭이 특별하게 이용된다.




제혁이 법자에게 들었던 형이라는 말.

교도소 쓰레기에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적 단어 '형'


제혁이 형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장기수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며 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폭 장기수는 형이라는 말에 얼굴을 움찔거리며 기뻐하고 내색은 안 하면서 이후 제혁을 친형처럼 챙겨준다.

이 대목에서 제혁이 어마어마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들 있다.




그 와중에 헤롱이 경호원 애드리브,

그 와중에 유대위 손 치움.




맞다.

제혁은 사회성 갑이면서 사회성 없는 것처럼 위장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결코 보호해야할 체격이나 얼굴이 아닌데 제혁을 보면 보호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면.

감빵 친구들은 그렇게 모두 제혁을 가족처럼 보호한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감빵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을 만나 서로 티격 태격 싸우다 정이 드는 상황이 거의 없다.

가족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혈연 집단이고 옛날에는 학교나 지역 모임 등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우린 그런 상황이 없기도 없거니와 피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형이라고 처음 부르는 떨림 대신 우리는 만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서로 견제하거나 깔아 뭉개려 하고 인간관계는 질척거리니 스마트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쿨하게 헤어진다.

심지어 진짜 가족과도 말이다.


MBC 한지붕 세가족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는 우리가 잊었던 오프라인 관계의 추억이 가득하고

느린 인간관계 변화 속도로 인한 떨림이 온전히 느껴지고 

공간의 제약으로 빠르게 밝혀지는 오해와 갈등의 해결이 있다.

외면하고 싶은 동성애를 불편하지 않게 마주할 수 있고 

왼쪽 팔의 불행을 오른 팔로 대신하는 받아들임의 미학이 있다.


이제 제작팀이 느닷없이 감빵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납득될 수도 있다.

그 옛날 전원일기나 한지붕 세가족, 야구 만화 같은 쌍문동 느낌의 따뜻한 드라마를 만들려면

응답하라 처럼 과거로 가야 가능했는데 현실에서 가능한 유일한 곳이 감빵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