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개론/약간 이상한 사진강좌

부끄러움 많은 소년의 섬세한 접근 "마크 리부"

cultpd 2020. 1. 2. 10:22

 

 

 

마크 리부(Marc Riboud)

 

“ 나는 촬영하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촬영을 좋아하고 촬영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없다.”


Fidel Castro interviewed by Jean Daniel. Havana, Cuba, November 1963

 

 

 

 

 

 

 

 

 

 

 

 

 

 

 

 



미국의 베트남 개입에 항의하기 위해 워싱턴DC 펜타곤 앞에 모인 군중.

 

 

 

The Ultimate Confrontation: The Flower and the Bayonet 

17살의 고등학생 잰 로즈 캐스미어(Jan Rose Kasmir)를 찍은 ‘꽃을 든 소녀’, 혹은 '궁극의 대결 : 꽃과 총검'

 

“나는 그때 캐스미어가 총검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오히려 병사들이 그녀를 더 두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크 리부는 1923년 프랑스 리옹에서 7남매 중에 5째로 태어났다. 마크는 어릴 적부터 아주 침착하고 소심했다고 한다. 형제들의 놀림에도 아무런 반응없이 듣기만 했던 마크는 오히려 보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여섯 살 아이는 창 틈 사이로 들어온 그림자 줄기를 응시했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짐에 더욱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광학 시간에 창틈이 렌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훗날 사진 찍기에도 대상에 바짝 다가서기 보다는 적당히 떨어져 찍는 버릇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의 사진 속 사람들의 시선이 작가를 응시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기하학을 잘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공대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공장의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 여행과 사진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일주일간의 여행을 핑계로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1951년 어느 날, 아버지의 중고 라이카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마크 리부는 자연스럽게 당시 최고의 사진가였던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을 만나게 되면서 르네상스의 회화주의 구성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매그넘의 초창기 멤버들과 교류하면서 1953년 그가 찍은 [에펠탑의 페인트공] 사진을 로버트 카파에 보여주었더니 사람을 시켜 당시 최고 권위의 잡지 <라이프>지에 싣게 했다. 이는 그가 저널리스트로서 처음 데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스스로의 사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건이기도 했다. 

왼쪽 뒷 모습부터 마크 리부 부인, 마크 리부, 브레송

 

 

나는 그에게 내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어요. 내가 혹여 그런 말을 했더라면 그가 거기서 미끌어질 수도 있잖아요.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수줍음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사진을 찍을 때 나는 항상 피사체인 그 사람의 존재를의도적으로 무시하는데, 그러면 그도 내 존재를 무시하게 되거든요

 

마르크 리부(Marc Riboud, 1923~2016)는 동서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1950~60년대, 서방에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철의 장막 속 공산주의 소련과 중국의 사진을 찍어와 외부 세계에 알린 최초의 서방 사진작가였다.

마크 리부의 사진이 사진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것은 소련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양극의 시대, 냉전 시대의 긴장감으로 냉혹한 평화가 살얼음 같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 두 세계는 철의 장막으로 막혀 있었는데 궁금증의 대상이었던 이 나라들을 뚫고 마크 리부는 사진을 통해 세상에 그 나라들의 일상 생활을 공개했던 것이다.



1957년 중국을 촬영한 마크 리부는 마오쩌둥의 모습과 중국의 일상을 세상에 소개했다. 

 

 

 

 

 

 

 

 

 

 

 

 

 

 

 

북경 마지막 귀족  1957

 

 

 

 

 

Afghanistan, 1955

 

 

 

 

 

'호치민(胡志明)', 1969

 

 

중국공산당 주석 마오의 동상, China, 1971.

 

 

 

 

베이징에서의 베트남전 반대시위, Beijing, 1965. 마오쩌둥과 월맹의 호치민 사진

'구내식당' 안산, 중국, 1957.

 1957년 중국을 촬영한 마크 리부는 마오쩌둥의 모습과 중국의 일상을 세상에 소개했다. 1957년 무렵은 마오쩌둥 정권의 인민에 대한 유화책이 저물고 ‘반우파운동’을 전개하던 혼란스러운 시기. 철강 공장에서 보호안경을 낀 채로 바쁘게 밥을 먹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대약진 운동의 전조를 표현했다.

 

“음악수업”, 소련, 1960

 

 

 

 

 

자화상(Self-portrait), 콩고, 1961

 

 

 

 

 

 

 

 

 

 

 

 

 

 

 

 

 

 

 

 

 

 

 

 

 

 

 

 

 

 

 

 

 

 

 

 

 

A man prays toward Mecca in the Saudi Arabian desert in 1974. Marc Riboud/Magnum Photos

 

 

 

Refugee Camp, Kinshasa (2 works), 1961

 

 

 

 

 

 

 

 

 

 

 

 

 

 

 

 

 

 

 

 

 

알제리혁명, 1954

 

 

 

알제리 혁명, 1954

 

 

모스크바 고리키공원에서 열린 세계체스선수권대회,1960.

 

 

'유리창거리', 1965,  베이징. 


 

 

 

 

 

 

카이버 패스(Khyber Pass) , 아프가니스탄, 1955

“My obsession is with photographing life at its most intense as intensely as possible. It’s a mania, a virus as strong as my instinct to be free. If taste for life diminishes, the photographs pale, because taking pictures is like savoring life at 125th of a second.” – Marc Riboud


나는 언제나 이 세상의 폭력과 괴물 같은 인간들보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훨씬 더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집착하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가능한 최대한 강렬하게 찍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를 추구하는 나의 본능만큼 강력한 광기이며 어떤 바이러스 같은 것입니다.

삶에 대한 미각(味覺)이 줄어든다면 사진도 창백해지겠지요.

왜냐하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1/125초의 ‘삶’을 맛보는 것이니까요. 



마크 리부가 80대에 한 인터뷰

“세상을 보는 나의 비전(vision)은 단순하다. 내일, 매 새로운 날, 나는 그 도시를 보길 원하고, 새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나고, 홀로 어슬렁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