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개론/카메라,렌즈 리뷰

1,500원으로 두 아이와 멋진 여행하는 방법

GeoffKim 2013. 3. 23. 06:30

요즘은 집 밖에 나서면 

아무 것도 안해도 그냥 몇만원이 사라집니다.


기름 값도 비싸고

아이스크림 값도 비싸고

정말 움직이면 돈입니다.


사우나를 가도 아이들 할인이 안되고 

어른 입장료와 똑같습니다.

목욕만 하면 좋은데 

찜질도 안하면서 꼭 찜질방 가자고 합니다.


지난 주에 고양이 까페에 갔었는데요...





입장료 1인당 8천원!!!

거기다가 맛나는 간식을 또 사줘야

저렇게 고양이들에게 인기를 끕니다.





거기다 베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면 

돈을 어디다 썼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집니다.





특히.. 저 2단짜리 콘 비쌉니다.

그냥 1단 짜리 먹자고 은근히 얘기해보는데

무조건 2단을 주문합니다.

거기다가 새로나온 아이스크림 주문하면 할인하는 행사를

진행중인데 그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하니 싫답니다.


베스키라빈스 직원 앞에서 설득하다가 

초라한 아빠 같아서 얼굴이 빨개지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말은 안하지만

이 아빠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ㅜㅜ


전 집에 와서 누가바 먹습니다... 젠장!






아무튼 이런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하려고

작은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아마 저처럼 은근히 가벼운 지갑때문에 

고민하시는 아빠들이 많을 듯 하여

대박난 여행기 올려드리니 한번 따라해보세요!!!


단돈 1,500원 들었습니다.








일단 제일 중요한건

집에서 단단히 밥을 먹이고 나와야합니다.

밥 한공기로는 안되고 최소 두 그릇은 먹이고

나와야 좋습니다.


비싼거 사주겠다고 당당히 얘기해도

배부르다고 안먹습니다 ㅎㅎㅎ





자, 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동차를 안타고 집 주위를 그냥 걸어다니는 것인데

계획이나 목적지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우연한 여행을 하는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 비법인데 

저는 해외 여행을 가도 제 맘대로 아무대나 돌아다닙니다.

우연히 결혼식이나 종교행사를 만나거나

골목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블로그에 안나오는 맛있는 집 찾는 일,

그런 것들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집 주변에 저런 오래된 집이 있었군요.

그런데 벽이 좀 이상합니다.





벌집 모양 벽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늘 집 주위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럴 때 좀 오버를 합니다.

"우와, 신기하다. 마치 벌집 모양 같네!

누가 이런 벽을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별 것도 아니었던 오래된 벽은 

우리에게 로마가 되고 아테네가 됩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집 주위에서 뱀을 발견합니다.

뱀이 무서워서 며칠을 돌아 갔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겁니다.

그래서 뱀을 잡으려고 작대기로 내리 쳤는데

그것은 뱀이 아니라 동아줄이었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죠.

데카르트는 그 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 눈이 나를 속였구나!"


우리 눈은 대상을 정확하게 보지 못합니다.

생각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고

늘 거기 있었는데 발견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눈은 거짓말을 합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죠?

모르면 안보이는 겁니다.


생각을 해야 그것은 보이는 것이고

보여야 존재하는거겠죠?


그래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입니다.



갑자기 즐거운 철학시간이 되었네요.





평상시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견하는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실제로 무의미하던 것이 유의미해지고

재미없던 것들이 재밌어집니다.






우리는 시장을 향했습니다.

시장 역시 아이들에게 따분한 공간일겁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빵집을 발견합니다.

어렸을 때 먹던 빵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시장 빵...


아이들은 깨끗한 빵집의 빵을 좋아하지만

이 느낌있는 빵집의 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어렸을 때 센베라고 불렀던가?

양과자라고 불렀던가?

그런 과자입니다.





그리고 이 도심에

아직도 손으로 쓴 글씨가 뚜렷한

소면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집 옆에 있었습니다.

참고로 여기는 시골이 절대 아닙니다.





집에서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묵 딸랑 한꼬치씩만 먹습니다.

1,500원!





떡볶이도 먹고 순대도 먹으라고 권해도

아이들은 먹지 않습니다.





또 다시 무작정 걷습니다.

처음엔 "아빠 어디 가는거예요?"라고 묻던 아이들도

이제 제법 신나는지 "이쪽으로 가보자, 저쪽으로 가보자" 

우연한 광경을 기대하며 떠나는 여행에 익숙해집니다.






길에서 홍보하는 형아들을 만납니다.

아이들이 말을 걸어보는데

형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재밌어보이지? 근데 죽도록 무거워!"





이거 무슨 동화책 같지 않습니까?

저렇게 크고 멋진 형아가 실제로는 무거워서 죽겠다는 이야기,

아주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전 행복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넌지시 아르바이트는 반드시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던집니다.





이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아무 골목이나

아무 계단이나 막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아까 내려다본 계단 아래가 나오면 

신기해합니다.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칩니다.





정말 집에서 500미터도 안되는 곳에

옛스러운 구멍가게, 담쟁이들이 존재합니다.







살짝 놀란 것을 발견합니다.

문패!!!






문패가 왜 이리 낯선지...

예전에는 집을 장만하면 상징적인 행위가 

문패를 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인가 문패가 사라졌었는데

참 신기합니다.





역시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가장 주의해야할 것은 유리 주의죠 ^^







그냥 아무 의미없는 각 그랜저도

우리에겐 신기한 것이 되고

대화의 단초가 됩니다.





이 수많은 우연의 피사체들은

모두 우리에게 대화의 소재가 되고

추억이 되고 교훈이 됩니다.





아직도 빗자루 만드는 분이 계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은 서울 목동의 중심부 상황입니다.

시골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장을 만났습니다.

저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집에서 7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재래시장이 있었다니...







계속 걷다보니

또 그 아르바이트 청년이 나옵니다.

한바퀴 돈거죠.

사실 이후에도 한번 더 만났습니다.





학생은 우리를 스토커로 알지 않았을까?

우리는 슬쩍 비켜가려고 했는데

저 친구,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또 인사를 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을

두번 째 만났을 때 반가운 것,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얘기에서 인연에 관한 이야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여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이 학생들이 저는 

짠하게 기특합니다.


아까 엄청 무겁다는 이야기가 자꾸 맘에 걸려서

그런가봅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 형아처럼

언제가는 무거운 짐을 질 것이고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앗!

이번에는 무거운걸 짊어진 학생이 아니라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학생을 만났습니다.






이거 정말 무슨 동화책에서 

한명, 한명 만나는 이야기 같군요.






이 학생은 삐에로 분장을 하고 있어서

더욱 애잔합니다.

역시나 상당히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작정 동네를 몇시간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저도 놀랄 정도로 멋진 것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물로 이 까짓게 뭐가 멋있냐.

이게 무슨 여행이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우연히 만난 다양한 사물과 사람들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게 지나치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으나


김춘수님이 꽃에 이름을 붙였을 때 꽃이 된 것 처럼

우리가 바라보고

존재를 깨닫고

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


우리 주변에는 신기한 것 투성입니다.






봄이 올겁니다.

깨진 물탱크 안에 만든 텃밭에는 

이번 봄, 어떤 식물이 자라날까요?





아이들은 다음 주에도 아무데나 돌아다니자고

저에게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기에 쓸 것이 정말 많다고 즐거워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돈은 굳었고

가슴 속에 뿌듯한 느낌도 들고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어린이들...


아무 계획없이, 목적없이

때로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하고

그러한 소중한 기억들이

가슴 속 텃밭에 

우연의 씨로 날아와 뜻밖의 파란 싹을 틔우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번 주말에 여러분도 우연의 즐거운 여행을 느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