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뉴스 리뷰

이창동의 시를 읽다

GeoffKim 2010. 7. 23. 22:06




이창동 감독

그의 시를 읽었다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감독들의 작품을 최근 몰아봤다

하하하, 박쥐, 그리고 시...

세 사람 모두 독특한 자기 세계를 뽐내는 감독이며

자신감이 붙어 이제는 붓에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하게 얘기하면 보는 사람 걱정으로부터 자유롭다




하하하... 자신감 붙으면 웬만한 독립영화 감독도 만들 수 있다

박쥐... 자신감 상당히 차오르면 웬만한 B급무비 마니아 감독이라면 만들 수 있다

시... 글쎄!

시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자신감이 있어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도

쉽게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좀 놀랐다











대한민국에 이창동 감독이 있어서 다행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에 이런 감독이 존재해서 기쁘고 고맙고 자랑스럽다

앞서 언급한 박찬욱, 홍상수 감독은 공히 우리 영화 문화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이란 사람은 정말 괴물이다



박찬욱 보다 그로테스크한 섹스를 그렸으며

홍상수보다 디테일한 일상을 그렸다

허진호보다 강한 생략을 했으며

박진표보다 아픈 눈물을 담았다



이 작품과 맞먹는 작품은 밀양 정도나 될까?

어허... 근데 밀양도 이 양반 작품이다

이건 뭐 괴물아닌가?




이창동은 시를 썼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설명문, 수필의 시대다

시는 이미 죽어버렸는데

어떻게 영화에서 시를 쓸 수 있는가?

문화적으로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작가주의 감독이 살아남기도 힘든데

작가가 시를 쓰고 있다



손자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어떻게든 극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만들어야하는데

말이 없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은 못하겠지만

뭇남성들과의 회의 장면에서 뭘 표현해야 할텐데

그냥 밖으로 나와 꽃만 본다

느껴진다

보여지는게 아니라 느껴진다

강요와 극단의 시대라 처음엔 불편하고 낯설지만

점점 느껴진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상상력과 여백을 되찾아 준다

문학이 그랬고 영화가 그렇지 않았나?




이제 방송에 자막이 없으면 들리지도 않을만큼 우리의 귀는 퇴화했다

조금만 지루하면 참을 수 없을정도로 우리의 눈은 볼거리만 쫓는다
 
젊은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목놓아 외치고 싶다

139분만 이 영화에 투자하면 마음 속에 잊혀졌던 무언가가 떠오르거나

원래 없었던 무언가가 꿈틀대며 생겨날 것이다



시는 죽지 않았다


이 영화를 예술 영화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따분한 노인네 영화라고는 더더욱...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보다 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대작이다

작은 별, 지구 정도가 폭발되는 영화가 아니라

내 뇌 속의 우주가 폭발하는 영화다


할리우드는 언제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영화 많이 보고 돈 많이 들이면 한국 감독들도  만들 수 있다

그건 공감대를 형성하는 관객이 몇명인가하는 시장의 게임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다



하지만...

유럽 영화는 만들기 힘들다

그건 아무나 만드는게 아니다



시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

이창동 감독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