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대역을 맡은
무명의 3류 배우가 있었다.
영화 <나의 독재자>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영화는 필름느낌부터 주제와 소재, 배경까지
그리고 배우들의 라인업까지 완전히 영화적이다.
요즘은 드라마적인 영화가 판치고
얕은 재미와 뻔한 감동, 익숙한 스토리가 인기있는 저급한 사회지만
영화라는 것이 꼭 드라마처럼, 예능처럼 가야하나?
<나의 독재자>는 영화만 가능한 설정이다.
물론 방송이나 인터넷 동영상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누구도 이런 소재와 주제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을 건드릴 때 빨리 집중하고
빨리 효과를 보기에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독재자 속에서 나는
어린시절 보았던 영화의 꿈을 보았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곳, 사람, 시간을 경험한 것이다.
그 집중의 한가운데는 배우 설경구가 있다.
김일성의 대역으로 몰입하다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됐는데도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흐른다.
블랙 코미디같기도 하지만 감독은 웃기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틀 자체가 주는 코미디가 이미 코미디이기에
디테일한 장난스러움은 치지 않았다.
설경구는 아들에게 자신이 진짜 김일성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버지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진짜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펼친다.
김일성이 죽고 설경구도 죽는다.
나의 독재자가 죽은 것이다.
나의 독재자 감독은 이해준이다.
바로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든 감독이다.
우리나라에 감독이 몇명일까?
영화 감독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해준 감독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감독이 몇이나 될까?
천하장사 마돈나를 감독하고 이후 김씨 표류기 감독,
2013년에 끝까지 간다의 각색을 하고 2014년 나의 독재자로 돌아온 것이다.
그 외에도 각본으로 열광했던 영화 남극일기의 각본도 이해준 감독의 작품이고
아라한장풍대작전, 품행제로 등의 각본, 2001년 신라의 달밤 원안도 그의 작품이다.
나의 독재자.
영화가 끝나면 다른 영화처럼 후련하거나 재밌거나 즐겁거나
슬프지 않고...
한동안 여운을 즐길 수 있다.
그런 영화가 대한민국에 몇편이나 있겠나?
그런 의미에서 좀 무겁고 낯설수 있으나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를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