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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와 <여왕의 꽃>의 소름돋는 차이

cultpd 2015. 3. 17. 09:09

정말 소름돋는 비교.

오랜만에 대단한 드라마가 걸려서 

이게 뭐지?


제목은 촌스러운 풍문으로 들었소.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나 목욕탕집 사람들 같이

촌스러운 제목을 한 이 드라마는 나를 소름돋게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동시에 검색을 했다.


대한민국에 이 정도 퀄리티의 드라마를 할 수 있는 

작가와 PD가 그리 많지 않은데 누굴까?


헐!!!

역시나!



일요아침드라마 짝부터 좋아했던 안판석 PD.

그리고 JTBC에서  '아내의 자격'과 '밀회'로 나를 놀라게 했던

정성주 작가!


놀라운 것은 아내의 자격과 밀회가 모두 안판석, 정성주 콤비였다는 것.


일단 이 콤비의 특징은 기존 틀을 거부하고 클리셰라고 부르는 

뻔한 통속을 모두 거부한다.


이 얘기는 거꾸로 얘기하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풍문으로 들었소를 보자 마자 느낀 것이

이건 블랙 코미디, 혹은 연극적 구성이었다.


블랙코미디라고 하니까 잘 모르는 블로거들이 무슨 코미디의 일종인 줄 알고

별로 안웃기다, 뭐가 부족하다 이렇게 써놨다 ㅋㅋㅋㅋ


그건 블랙코미디라는 말을 마치 개그콘서트의 코미디와 헷갈리는

것과 같은...


물론 코미디는 개그콘서트와 같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코미디에 블랙이 붙지 않았나?


블랙은 화이트나 핑크와 다르게 어둡고 칙칙하다.

블랙 코미디는 일반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와 다르게

환한 웃음이 아니라 씁쓸한 웃음이다.


쉽게 얘기하면 누군가 못마땅하면 "저 사람 웃기네"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웃기는건 ㅋㅋㅋㅋ 하며 웃는게 아니지않나?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보면서도 "참나 웃기는 일이 다있네"라고 할 때

이건 배꼽잡고 웃는 것이 아니지않나?


그러니까 블랙코미디는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니라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형식이고

20세기 이후 등장하는 부조리 문학, 부조리 극이 지향하는 점이다.



그래서 블랙코미디의 시초는 주로 셰익스피어의 희비극(Tragicomedy)으로 

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깔깔대며 웃는 작품이 아니듯

풍문으로 들었소 역시 깔깔대는 코미디가 아니라

부조화, 잔혹한 현실, 고통스러운 상황, 괴이한 우연 등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이 묘한 장르는 사실 연극, 영화나 문학에서는 칭송 받는 장르이지만

안방극장, 그것도 한국 안방극장에서는 너무 어렵고 낯선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이렇게도 재밌는 작품의 시청률이 9%.





헌데 여왕의 꽃은 시작하자마자 13%, 14%까지 치솟아 오른다.


여왕의 꽃은 익숙하다.

이런 것을 클리셰라고 하는데 그야 말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곳으로

흘러가며 기대하는 위기와 보고 싶은 반전이 잘 서비스된다.

예를 들면 시작하자마자 사람을 때려 죽이고 난리가 벌어진다.


이래야 한다.

한국에서 드라마로서 성공하려면 이렇게 상투적이어야하고

늘 보던 형식이어야한다.





하지만 풍문으로 들었소는 시청자가 원하는 쪽으로 절대 가지 않는다.

시청자가 원하는 뻔한 곳으로 가면 그것은 부조화가 아니기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아성은 콩쥐처럼 귀족집에서 당해야하는데

결코 당하지 않는다.

악역인 시부모는 콩쥐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 나야하고 갖은 음모를 꾸며야하는데

풍문으로 들었소는 안꾸민다.

오히려 유준상은 이준의 자식을 보며 할아버지라고 좋아한다 ㅋㅋㅋ

이것이 웃긴거다.

그 갈등의 순간, 유준상은 탈모를 걱정한다.


이재룡 부인 유호정도 다른 드라마에서는 가장 악독한 일을 해야하는 

롤인데 절대 그렇지 않고 우아한 모습을 유지한다.


고아성의 부모는 부잣집에 와서 돈을 요구하거나

진상이어야하는데 이 사람들 화내면서도 은근히 부잣집에 간 딸에 대해서

좋아하는 속물 근성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웃기는 상황을 연출하는 블랙 코미디이고

블랙 코미디라서 시청률이 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가슴이 아프다.

최소 15%는 나와야하는 엄청난 퀄리티의 드라마를 만들어 놓고

9%를 유지하고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하나의 악재가 겹친 것은

안판석 PD가 또 쌈마이면 드라마가 좀 재밌어지겠지만

안판석 PD도 워낙 대가라서 퀄리티가 높다.

그러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일부 뭘 모르는 블로거들은 풍문으로 들었소가 너무 느리고 컷이 길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ㅜㅜ

이런 사람들이 왜 드라마 리뷰를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그냥 VJ특공대나 리뷰했으면 좋겠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컷트 길이나 호흡은 정통적인 것이고

또 퀄리티가 매우 높은 편집법을 택하고 있다.

젊은 피디들이 의욕을 가지고 만드는 TVN의 하이틴 드라마 같은 것에 

익숙해지면 사실 지루하게 느껴지고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겠지만

작품을 몰입해서 잘 보다보면 편집을 참 잘한 드라마다.


물론 이전 밀회에 비하면 컷트 엄청 짧은 편이다.

밀회에서 오디오와 사진 같은 비디오를 편집한 것 보면

안판석 피디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자꾸 숨가쁜 편집에 익숙해지고 

자극적인 소재와 상투적인 극 전개에 젖어있다보면

좋은 드라마를 볼 수가 없다.


이것이 전부 그동안 막장 드라마로 경쟁력을 높인 

대한민국의 막장 작가들 탓이라고 생각하여 원망스럽다.


<풍문으로 들었소>를 여러분께 추천한다.

마치 마음의 양식처럼, 혹은 경험의 축적을 위해서라도 

양서를 읽듯 열심히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드라마를 성공시켜주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 신데렐라, 콩쥐팥쥐만

봐야하고 태생의 비밀이나 막장 개싸움 드라마를 반복해서 봐야한다.


<풍문으로 들었소> 제작팀에게 팬으로서 감사함을 전한다.

안판석, 정성주 콤비의 작품을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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