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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숙연해지는 한끼줍쇼 청춘의 잔인한 정의

미디어리뷰 2017. 2. 27. 03:13

늘 청춘의 힘을 믿고 청춘이라 생각하고

청춘을 꿈 꾸며 살아간다.

아니, 우리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물론 우리라는 복수를 썼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태극기를 흔들며 늙어가려 애쓰니까...


한끼줍쇼 길 위에서, 청춘!

지난 포스팅에서 민폐 콘셉트에 대한 걱정을 했었는데 한끼줍쇼가 길 위에서 만난 청춘에 대한 단상들은 그야말로 세팅된 사람들에게는 나올 수 없는 명언들이 등장했다.


처음 감동한 청춘에 대한 좋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는데 

뭐든지 할 수 없는 것.

띄어쓰기도 청춘만큼이나 아주 바르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심장을 톡 건드는 아픔이 느껴졌다.

이런 걸 짠하다고 표현하는 것인지?




어른들은 늘 청춘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정작 청춘은 늘 힘들고 아프다.

그래서 반기문 아저씨가 청춘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정 안되면 해외에 봉사 활동을 가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도 가슴을 찌르는 칼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함부로 건드는 것은 참 잔인하고도 못된 짓이다.


그리고 정협군이 내 뱉은 청춘에 대한 잔인한 정의.

이것은 정말 얼얼할 정도로 심장이 아파 왔다.


사진출처 : jtbc 한끼줍쇼


나이 든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에 절로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김진태 아저씨 같은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포기한 사람들은 모른다.

청춘이 얼마나 아프게, 얼마나 슬프게 현실을 배워가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지.

한끼줍쇼에서만 볼 수 있는 이처럼 살아있는 현실과 우리의 현주소.

이런 걸 많이 보여주면 한끼줍쇼는 민폐 콘셉트의 프로그램 이미지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끼줍쇼 길 위에서, 청춘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