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출연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인기 역사 강사 설민석이 민족대표 33인 폄훼 논란으로 떠들썩했는데 16일 설민석 페이스북에서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이것을 설민석 사과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사과한 것도 안한 것도 아닌 글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단지 입장 발표로 보는 것이 맞고 결론적으로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설민석의 비판적인 의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리는 글이다.
설민석 강사는 민족대표 33인 폄훼 논란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알리고 싶었다는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은 3.1 운동 당시 광화문 근처 고급 요릿집인 태화관에서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낮술을 먹었다는 등의 표현에 항의했다.
또 설민석 강사가 강연에서 발언한 “그 집(태화관) 마담 주옥경하고 (독립선언을 주도한) 손병희랑 사귀었다”는 말과 손병희의 셋째부인인 주옥경을 술집 종업원으로 표현한 것 등에 폄훼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설민석 강사가 자극적으로 현대화하여 표현한 부분이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 간 이유인데 설민석은 “마담이 디씨(디스카운트)해 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라는 표현을 썼다.
설민석 강사의 강연을 들어보신 분은 설민석 스타일이 원래 과거 역사를 현대화하여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며 그러한 스킬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이라 어떤 역사나 모두 비슷하게 해석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민족대표 33인 후손들의 항의에 대해 설민석이 밝힌 발언의 정당성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민족대표 33인이 3·1 운동 당일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자발적으로 일본 경무 총감부에게 연락하여 투옥된 점과 탑골공원에서의 만세 운동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세 운동을 이끈 것은 학생들과 일반 대중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계의 평가가 있으며 민족대표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역시 존재한다”며 “저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해 도서 및 강연에 반영했으며, 그 날, 그 장소, 그 현장에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밝혔다.
하지만 설민석은 “그러나 그것은 그 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또한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 되며, 그분들을 추모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유족 여러분들께 상처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유족들에게 사과도 아니고 사과가 아닌 것도 아닌 방식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민족대표 33인은 대부분 종교계 인사들인데 1919년 3·1만세 의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종교계 대표를 말한다. 종교별로는 천도교 대표 15명, 기독교 대표 16명, 불교 대표 2명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민족대표 33인은 3월 1일 태화관에 모여 조선민족의 독립을 선언하는 선언서를 낭독하고 자진신고하여 일본 경찰에 잡혀갔다.
그 중 일부 인사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최린, 박희도, 정춘수 등이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져있는데 친일, 반민족 인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33인 모두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서 반론이 끊이지 않는 역사다.
최린, 정춘수, 박희도, 최남선 친일파 변절
박희도는 여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서 논란이 됐던 사람인데 친일 성향의 월간 잡지 '동(양지)광'의 창립인, 주간으로 완전히 친일로 변절한 인사다.
최린은 1934년 중추원 참의, 37년 총독부 조선어판 기관지 매일신보 사장, 39년 임전 보국단장을 역임하며 친일에 앞장섰다. 이후 납북 되었다고 한다.
정춘수는 감리교 목사로 만세 운동을 지도하고 고문을 당하는 등 친일 행위는 없었지만 신사 참배 및 창씨 개명을 했다.
또 민족대표 33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육당 최남선도 친일파 명단에 들어있다.
민족대표 33인을 우리는 학창시절 존경해야 할 인물들로 배웠지만 사실은 민족대표가 아니라 종교대표라는 것과 그들 중 일부가 변절하여 친일파 행적을 보였던 것 등은 바로 잡아 학습되는 것이 마땅하다.
민족대표 33인을 독립운동가로 존경하고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읽으며 꿈을 키운 어린시절, 하지만 육당 최남선이 도쿄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에게 학병지원 권고 강연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다만 3.1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는 공로가 있고 이것을 바라보는 역사적 해석과 관점은 누구나 다를 수 있기에 설민석 강사가 사과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설민석 강사는 “제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며 “저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