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참 못그린 듯한 회화 한 점에 정신이 아득했다.
뭐지?
무심결에 지나갈 법한 못그린 그림 하나가 내 마음에 훅 들어온 것은
그 이유도 참 이상한 "이상함" 때문이었다.
1876년 작품. 당신은 이 그림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에드가르 드가[ Edgar Degas ]라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 '압생트', 혹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드가라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화가인데 드가가 그림 잘 못그렸던 어린 시절 그렸던 그림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참 묘하게 못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압생트라는 그림은 드가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1876년 작품이다.
친구 두 명에게 모델을 부탁해서 그렸다고 하는데 한 친구는 조각가 마르슬랭 데뷔탱이었고 다른 한 명은 모델 엘렌 앙드레였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는데 유럽의 도시에 근대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발전은 낙오자를 만들고 거지들, 술주정뱅이들을 만들었다.
드가가 활동하던 시절 프랑스는 벨 에포크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벨 에포크라는 건 프랑스어로 Belle Époque, 아름다운 좋은 시절을 뜻한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를 주로 말하는데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으로 발전을 이루고 번성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시에는 이런 그림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프랑스에 가면 한 번은 사진을 찍고 온다는 에펠탑이 만들어진 시대.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는 아름다운 벨에포크 시절, 드가는 화려한 도시의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는 대신 산업화에 밀린 도시인의 소외된 단면을 그린 것이다. 이제 다시 두 그림을 보면 어떤 작품이 더 아름다운가?
오늘 드가의 작풍을 언급하는 것은 사진 수업과 관련하여 드가의 작품은 큰 깨우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압생트를 마시는 남자지만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보자. 구도가 참 정직하지 않은가?
다음은 마네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에드가 드가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 인상주의가 큰 흐름으로 등장했고 에드가 드가를 인상파의 대명사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드가가 인상파와 참 거리가 있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데생과 크로키에 매우 뛰어났다고 하는 드가는 개인적으로 볼 때 상당히 사실적이고 사진 같은 순간 포착의 느낌을 전해준다.
압생트를 봤을 때도 소름 돋도록 놀라운 것이 사람과 사물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순간 포착한 듯한 표정, 그리고 믿기 힘든 구도다.
나는 늘 구도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라고 강조하지만 1800년대에 그린 그림에서 보여준 과감한 구도!
그것도 사진처럼 어쩔 수 없이 찍히는 부분이 전혀 없이 오로지 작가의 의도대로 그려지는 매체인 회화에서 인물을 한 쪽 구석에 몰고 오른쪽 남자의 시선 방향을 잘라버린 것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프레임 밖은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을 한쪽 구석으로 내 몰면서 도시화에 내몰린 소시민의 고달픈 삶이나 소외, 피곤함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초점을 잃은 표정을 순간 포착함으로서 더욱 피곤한 삶의 묘사를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라는 책을 읽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드가의 압생트도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인이 그린 것 같은 놀라움을 나에게 준다.
그래서였을까? 애드가 드가의 압생트는 그린지 17년이 지난 1893년에야 발표된다.
그림에서 이렇게 오버 더 쇼울더 샷을 그리고 악기와 사람들을 잘라버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그림에서도 역시 발레리나 한 명을 프레임 밖으로 배치했다.
아래 그림은 헤드 스페이스를 주지 않고 바닥과 그림자 쪽 스페이스를 더 주는 놀라움을 보이고 와주의 발레리나 역시 몸을 자르고 가운데 뒷 편 발레리나를 중첩시키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배치함으로서 스탠바이하고 촬영한 듯한 느낌이 아니라 스냅과 캔디드 작법의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구도 아닌가?
고로 내가 주장하는 구도의 새로운 시도와 고민은 요즘의 일이 아니라 이미 19세기부터 노력했던 것이리라.
이집트 피라미드에 요즘 애들 안 되겠다라고 써 있는 거랑 뭐가 다른가?
밑을 보는 사람과 위를 보는 사람을 바라보는 드가의 시선 레벨이 묘하다.
그림은 그냥 아이레벨을 맞춰서 그리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드가의 그림은 모두 바라보는 드가가 위에서 바라보거나 벽 등으로 가리는 OTS 샷을 쓰거나 프레임을 자름으로서 상상의 여백을 제공한다.
마음껏 상상하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구도 파헤칠 수 없었던 신비로움을
우리가 기를 쓰고 설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한 예술가라면,
상상력이 허락하는 대로 마음껏 상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에드가 드가-
19세기 화가 에드가 드가의 작품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새로운 구도와 새로운 시도를 늘 강조하는 나의 강좌에 너무 편향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가 늘 해오던 고민이자 시도다. 어떻게 하면 사실적으로 감상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점에서 회화나 사진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나를 경악하게 한 그림 두 장으로 여러분께 새로운 구도에 대한 느낌을 전한다.
사람들은 포토샵으로 지우려 애쓰는 저 썰렁한 철봉을 왜 회화에 삽입해야만 했나?
우리는 왜 피사체를 늘 정 가운데에 두어야 하고 공백을 두려워하며 모든 것을 프레임 안에 끌어들여 설명하려 하는가?
드가의 고민을 우리도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