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개론

사진작가 육명심, 태생적인 반골기가 그를 위대한 사진가로 만들었다

미디어리뷰 2021. 5. 9. 08:53

 

육명심 사진작가, 전 대학교수
출생 1933년 9월 10일, 대전광역시, 89세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수상

2016
은관문화훈장

1974
제12회 동아사진콘테스트 특선

1968
동아국제사진살롱전 은상

 

경력

2000 ~ 2001
상명대학교 대학원 사진과 교수

1982 ~ 1999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강사

1981 ~ 1999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1975 ~ 1981
신구대학 사진과 교수

1971 ~ 1975
서라벌예술대학 사진학과 강사

 

백민
열화당
2019.10.20.

검은 모살뜸
(육명심 사진집)
열화당
2017.03.01.

육명심
(Yook Myong-Shim)
열화당
2015.12.10.

장승
(육명심 사진집)분홍개구리
2015.10.30.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분홍개구리
2014.12.26.

육명심 영상사진
(1966-1978)
글씨미디어
2012.11.01.

육명심 이것은 사진이다
(육명심 사진인생론)
글씨미디어
2012.11.01.

예술가의 초상
(육명심사진집)
한미사진미술관
2011.10.07.

세계사진가론
(1900-1960, 열화당미술신서 62)
열화당
1987.04.01.

 

육명심 작가에게 사진이란?

ON MY WAY!

"사진은 내 길을 찾아가는 수단이면서 좌표였고 사진을 통하여 인생의 내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육명심 작가는 다른 사진작가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려 애썼다. 오직 자신의 길을 가려했던 작가 육명심.

1964년 카메라를 처음 손에 잡았다. 결혼하고 나서 33살에 부인이 찍던 카메라를 접하게 된다.

신혼여행에서 카메라 조작법을 부인에게 배워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을 배우려고 서울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찾아다녔지만 모두가 똑같은 것만 가르쳤고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더 찾아다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육명심 작가는 원서를 보며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태생적으로 반골기가 있어서 남들이 안 했던 것, 특이한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한 후 반 년 만에 사진 대회에 나가는데 많은 작가들이 좋은 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했는데 육명심 작가는 촬영을 하지 않고 그들의 촬영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남들이 찍지 않는 사진을 찍었고 입상을 하게 된다.

육명심 작가는 지금의 대가가 된 비결을 남들이 찍지 않는 독특한 사진을 찍은 것이 주요했다고 밝힌다.

 

 

"모두가 통념이라는 사회적인 큰 틀, 대세에 떠밀려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예술은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제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수단이다."

반 고흐에게 그림이 없었다면 그는 인생을 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파멸될 운명의 인생을 살려낸 것이 예술이다.

 

 

사진작가 육명심의 명언!

 

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 사진작가에게 사진의 의미는 고흐에게 그림의 의미일 것이다.

"예술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키는 도구다."

"예술이란 금기시되고 제약받게 되어있는 사회적 구조, 틀 속에서 가장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틈바구니다."

"예술이란 나의 내면적인 생명 충동과 직결되어야 한다."

"의미나 목적을 내세우지 마라! 부질 없는 짓이다. 의미와 목적을 내세우면 딱딱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냥 찍어라! 그냥 반응만 해라! 내가 기분 좋아서 찍으면 남들도 좋다."

 

학창 시절 시를 좋아했고 지금도 시집을 계속 찾아 읽는다.

시에서 감성의 샘을 얻어 사진을 찍었다.

꽃이 아름답다고 꽃을 덮쳐버리면 안 된다. 우선 꽃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껴야하고 감동해야한다.

그 감동에 반응만 하면 된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산업화가 극도로 빠르게 진행되던 시절, 사라지는 것들을 사진 작가가 찍어놓지 않으면 후세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전국의 장승을 7년 동안 찍었고 백민을 5년 동안 찍었다.

 

 

 

백민 촬영

“정확히 1978년부터 찍기 시작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지난날 우리사회의 기층민인 토박이들.

무나 오이를 장독의 된장 속에 한동안 깊이 박아두면 그 맛이 배듯이, 자연 속에 깊이 파묻히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나라 우리 풍토의 땅기운이 뼈속까지 스며든 그런 맛이 나는 사람들 말이다.”

‘장승’, ‘검은 모살뜸’과 함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계속된 그의 ‘우리것 3부작’ 마지막 사진집이 백민이다.

백민(白民)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벼슬이나 감투를 쓰지 아니한 일반 백성(百姓)’

 

 

"검은 모래찜질은 제주도 사투리로 '검은 모살뜸'이라 한다. 검은 모래찜질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민간요법이다. 이곳 섬사람들은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그야말로 더위가 최고로 기승을 부릴 때 검은 모래밭으로 간다. 그리고는 한껏 달아오른 모래 속에 몸을 깊이 파묻고 찜질을 한다. 그러면 사대삭신 육천마디 쑤시고 저리던 병이 낫는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앞다투어 더위를 피해 모두들 달아나는데, 이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두 손을 활짝 벌리고 더위를 정면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이 지방에서는 모래찜질을 주로 여자들이 한다. 우리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이들에게서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본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그리운 얼굴들이다."(육명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