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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인기비결의 심리학적 고찰

cultpd 2011. 5. 11. 07:30
방송 PD로서 모처럼 좋은 프로그램을 발견하여
극단적으로 칭찬하고 싶고
또한 블로거로서 이 프로그램을 지키고 싶다.

<나는 가수다> 인기비결의 심리학적 고찰



<나는 가수다>의 기본적인 인기비결은
그동안 뭍에서, 사막에서 놀던 가수들이 물을 만났기 때문이다.

진짜 배우의 연기를 안방극장에서 구경하기 힘들고 극장에 가야하는 것 처럼
사실은 노래도 콘서트 장에 가야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절대로 TV에서 볼 수 없는 가수들의 퍼포먼스를 귀기울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MBC가 제공한 것도, 가수가 제공한 것도 아니다.

시대의 요구와 한 피디의 기획과 가수들의 목마름,
무엇보다 아이돌 노래 일색의 가요 음원시장에 질려 노래를 듣고 싶었던 대중들의
바람이 잘 맞아떨어져서 큰 이슈를 내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방송 프로듀서로서 이 프로그램의 기술적 비결을 알려드리겠다.
참으로 놀라운 비결이다.





영화는 스크린이 크기 때문에 곳곳에 의도를 배치한 미쟝센 기법이 중요하고
TV는 화면이 작기 때문에 클로즈업이 중요하다.
그래서 영화엔 줌인, 줌아웃이 잘 안보이고 방송에는 줌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유독 <나는 가수다>에는 클로즈업이 많이 등장한다.



심리학에 "사회적 증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마케팅, 설득 등의 책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사회적 증거 이론이다.


아주 아주 쉽게 예를 들어보겠다.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향수를 뿌리고 빗을 건네주는 웨이터가 있다고 치자.
참 친절한 웨이터다.
근데 계속 팁을 요구하는 간절한 눈빛을 손님에게 보낸다고 팁을 쉽게 건넬까?

간절한 눈빛보다 좋은 방법이 있다.
웨이터 옆에 바구니가 있고 천원짜리가 많이 들어있고 만원짜리도 한두장 있다고 하자.
그럼 손님은 "아! 천원짜리를 주고 가는구나, 만원을 주고 간 사람도 있네...
나도 줘야하는거구나..."


뭔지 느낌이 오지 않나?



여러명을 모아놓고 심리학 실험을 했다.

가짜 피실험자들 모두가 만장일치로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한다.
한명의 진짜 피실험자는 뭐라고 답했을까?

대부분의 실험에서 이런 경우 말도 안되는 답이지만 가짜들의 대답을 따랐다고 한다.


이제 방송 이야기를 해보자!

시트콤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우스운 장면에서 미리 다양하게 녹음해놓은
가짜 웃음소리 이펙트를 넣는다.
요즘은 코미디나 시트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잘 들어보면
반응 리액션이 삽입되어 있다.

특히 나는 가수다의 기획자인 김영희 피디가 잘하던 것이 인터뷰를 하면서 웃는 것이다.
이는 칭찬합시다나 양심냉장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짜 웃음소리를 넣는 대신 피디가 직접 웃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출연자를 힘나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청자가 따라웃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나는 가수다의 인기 비결...
사회적 증거효과를 제대로 반영한 리액션 편집이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부터 청중 평가단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가수가 노래를 할 때도 계속 중요한 순간에 시청자의 대표인 평가단의 모습이 보인다.




근데 이 분들의 표정이 예술이다.

돈 받고 나와서 알바하는 아줌마들이 아니라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정되어
초대됐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태도가 어마어마하다.

설득의 심리학에 시청자는 그대로 설득당한다.

입을 벌리는 장면에서 함께 입을 벌리고,
신나는 장면에서 같이 신나고
눈물이 글썽이는 모습,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고
나도 함께 진지하게 노래를 듣게 된다.





죽은 예능도 살려내는 것이 리액션인데
전문 방청객이 아니라 실제 빈잔이란 노래를 따라부르며
눈에 맺힌 촉촉한 눈물을 목격하는 것은
어쩌면 노래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그리워하며, 무엇을 공감하며 눈물까지 흘릴까를
생각하며

눈물 날까말까 했던 사람은 눈물을 흘리게 되고
아무 생각없던 사람도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느끼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수들이 듣는 리액션도 참으로 훌륭하다.

그들은 어디서나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고
노래에서만큼은 절대 2등을 용납 못하던 자존심 강한 가수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게 되고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를 노력하고 고민한다.

이것은

우리 노래 문화의 한단계 업그레이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아이돌 노래에서

지나간 옛사랑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잊었던 설렘을 찾았던가?






또한 보아가 부른 노래 가사가 그렇게도 애절하고


아름다운 가삿말이었는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세월은 흘러


가요무대를 보는 아저씨들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하던 내가

나이를 먹었다.


나이를 먹은 우리가 볼 가요무대는 어디에 있는가?





세대를 소통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일밤이 되살아났다.


그 비결은 역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리액션과 나의 리액션이 같다는 것에

맘이 놓이는 감성 커뮤티케이션의 작용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장을 찾았다는 안도의 한숨일 것이다.







임재범의 노래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박수치던 아저씨를 보았다.

우리...
그동안
너무 메마르지 않았었나?

웃기지 못하면 죽고
쇼킹하지 않으면 편집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불안감은 없었나?

노래하나 제대로 듣고 살 수 있는 다양성이 있었냐 말이다...







사회적 증거효과를 잘 활용한 편집.

연예인의 과도한 폭로나 우스꽝스러운 개인기로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의 진심 담긴 노래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평가단의 클로즈업에서

우리는 <나는 가수다>에 설득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덧붙이자면

이토록
노래 문화를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음원 시장을 흐린다'는 말도 안되는 이기적인 주장으로
흐리려는 집단들에게 심각한 경고를 보낸다.

시장이 커져야 먹고 살수 있는 것이니 잠자코 조용히 기다리라고 얘기해주고 싶고
그런 말도 안되는 주장 할 시간에 소속 가수들 가창력에나 신경써서 나가수에 꼭 출연시키라고 얘기하고 싶다.

또한

악을 쓰는 창법의 가수만 살아남는다는 주장은 일면 설득력 있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기때문에
악쓰는 창법이 지겨울 때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편안한 창법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이고
또... 자연히 무대매너가 뛰어나거나 비쥬얼이 좋은 가수들도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니 역시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


이제 노래를 듣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감동의 방법까지 강요하진 말자...

대중은 뛰어난 지적수준과 문화 소비 역량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악쓰는 노래만 들을 줄 아는 바보들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