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개론/약간 이상한 사진강좌

CULTPD사진강좌#50.순간포착과 귀차니즘의 대결

GeoffKim 2013. 6. 6. 14:38

컬트피디와 김피디가 함께 쓰는 약간이상한 사진강좌 

#50회.

주위 초보자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시작한 강좌가 50회를 맞이했습니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저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100회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오늘은 50회이니만큼 기초적이며 중요한 사진강좌를 뿌립니다.



순간포착과 귀차니즘의 대결


아래 사진을 보고 답해보세요.

어떤 상황이 사진찍기에 더 어려울까요?


다리 위를 소녀가 지나가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은 순간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지나가는 소녀의 모습이 예뻐서 갑자기 카메라를 꺼내

찍은 사진입니다.

소녀가 다리를 3/5 이상 건너가면 별로 의미없는 사진이 되기때문에

빨리 찍어야하며 그 순간 상단의 도시 풍경, 그리고 갑자기 들어오는 구름.


구름이 한쪽에만 있었고 도시의 수평도 맞춰야하고 

노출만 해도 쉬운 풍경이 아닙니다.


하지만 찍었습니다.

좋은 사진일까요?

아님 순간포착을 잘 한, 그러니까 어려운 상황에서 잘 찍은 사진일까요?


다음 사진을 보시죠!






그냥 자전거들이 서있는 자전거 주차장입니다.

사람도 없고 자전거도 움직이지 않고 

아주 쉬운 사진입니다.

노출 측정할 시간도 많고 구도 결정할 시간도 많고

좋은 사진 나올 때까지 몇번이고 셔터를 누를 수 있습니다.


두가지 사진 중 어떤 사진을 좋은 사진으로 평가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 탄 소녀의 사진이 더 좋다고 평가할겁니다.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순간포착한 사진에 점수를 더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여백이 있는 자전거 주차장 사진이 더 좋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왜 그럴까요?

별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여백이 좋고 사람은 한명도 없지만 사람들이 각각 자유롭게 세워놓은 

뭐 그런 자유가 좋습니다.

획일화된 주차보다는 마음대로 세워놓은 그 느낌이 좋은겁니다.


그러나!!!

작가의 그러한 주장이 대중에게 먹혀야 말이죠.

사진이 무슨 글입니까?

아니면 연설의 자료화면입니까?



사진이란 것은 

한장의 사진 안에 그 모든 것이 잘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공감하게 만드는 미쟝센 적인 것입니다.


미장센 mise en scène

무대 예술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무대 위에 인물이나 소품 등을 의미에 맞게

상징적으로, 비유적으로 잘 배치하여 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에 한 집을 표현했는데 가운데 액자에 박정희 사진이 걸려있다면

이 집의 성향은 보수적이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혹은 가부장적인, 혹은 군대 식의 

느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자리가 허전해서 아무 액자나 걸어놓은 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차카게 살자"같은 붓글씨라도 붙어 있어야 의미가 되고 

그러한 배치와 구성을 잘 한 화면을 우리는 미장센이 참 좋다라고 말합니다.


반대되는 개념으로 몽타주가 있죠?


몽타주 montage 


몽타주는 쉽게 편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개의 다른 그림이 합쳐져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겁니다.

물론 전시회에 몇장의 사진을 붙여서 만드는 몽타주적 기법도 있지만

사진의 기본은 미장센입니다.


문학적으로 말하면...

사진은 소설이 아니라 시입니다.



다리 위를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소녀를 찍다가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발견했습니다.


오예!!!!!


 



다시 순간 포착한 비행기 사진입니다.

물론 구도 잡고 노출 맞추다보면 비행기는 이미 화면의 왼쪽으로 날아가고

창 밖으로 찍은 사진이라 더 왼쪽으로 팬하면 창살이 걸리는

아주 괴로운 사진입니다.


그리고...


자전거 주차장 옆에서 찍은 포장마차 촌의 수도들입니다.




아주 시간은 충분하고 마음껏 연출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포장마차가 이 수도를 통해 호스를 연결하여 장사를 합니다.

그 삶의 원천, 샘물같은 수도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듣고 보니 멋진 사진이죠?


그러나 상당히 허접한 쓰레기 사진입니다.

설명을 해야 의미있는 사진은 무의미한 사진입니다.


사진 속에서 이미 작가와 감정을 공유하고 

설명을 듣고 나면 그 모호한 감정이 뭐였는지 깨달으며 

더 감동받는 그런게 좋은 사진입니다.


시를 읽었을 때 대충이라도 감수성을 자극받아야지,

설명을 듣고 나야 무슨 시인지 아는 그런 난해한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시인 중에도 혼자서 자위하는 시인들이 꽤 많습니다.


물론 읽자마자 무슨 의미인지 바로 해석가능한 시는 또한 좋은 시가 아니겠죠.

그건 선전, 선동적인 목적 시고요.

그냥 느낌, 감성, 바람, 여유, 설렘, 긴장, 위험, 불길, 욕정... 등등등

뭐라도 느끼게 만들어야겠죠.





오늘은 사진강좌 50회를 맞아 아주 무의미한 사진들을 

보여드렸습니다.

순간포착을 잘 한 사진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뭘 순간포착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간적으로 빨리 담아야하는 사진과 시간이 충분하여 마음대로 담을 수 있는 사진 중에

더 어려운 사진은 순간포착이 아니라 시간이 많을 경우입니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찍었을 법한 사진으로 작가의 실력이 뽀롱나기가 쉽습니다.


자! 그럼 좋은 사진 만들기 정답 발표.



자전거 주차장 사진은 한쪽에 일렬로 각을 잘 잡고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들과

또 다른 쪽에 마음대로 자유롭게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를 대조하여 보여주면 

좋은 사진이 됐을겁니다.

대충 몇대 자유롭게 서있는 모습으로 자유, 혹은 자전거 주인의 성격을 묘사한 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거죠.


다음 포장마차 수돗가 사진은

밤에 포장마차들이 장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다시 현장에 가서

호스를 꼽는 모습과 분주히 포장마차를 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야 좋은 사진이 됩니다.

물론 거기에 술한잔 하려고 퇴근길 양복입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있으면

더욱 훌륭한 사진이 됐겠죠.



정답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전거를 어디서 사다 놔야하나,

아니면 잘 세워져있는 자전거를 내 생각대로 옮겨놔야 하나...

귀찮기도 하고 조작이기도 합니다.

포장마차 나오는 밤에 여기를 다시 와야하나...

귀찮죠?


결국 좋은 사진 찍는 비결에는 기다림,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귀찮으면 지는겁니다.

수만장의 무의미한 사진들을 찍는 것보다

노력한 한장의 사진이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간포착한 기가 막힌 사진으로 승부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내공이 센 작가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아마추어가 훨씬 순간포착할 확률이

많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