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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에 관한 주옥같은 글: 주철환 사장

GeoffKim 2010. 5. 15. 23:48


확인, 또 확인의 작업

장동욱 피디의 글


확인 확인 또 확인의 그 영원한 확인작업

1.MC,출연자,리포터,기자 기상캐스터, 교통캐스터의
모닝 콜,모니터 연습실에서 깜박 졸음의 세계로 갔는지,또 분장실에서 깜박,출연자와 PD의 철저한 체크 또 체크 ,...치명적인 방송펑크는 나의 순간적인 방심과 자만,거드름에서...


2.방송TAPE의 확인 또 확인
잘못된 방송TAPE가 아닌지, LEAD와 TAIL은 정확히
넣었는지,편집중 WHITE는? 체크 또 체크! AUDIO,
VIDEO, MUSIC, EFFECT는?
3.원고에서 날자,숫자,지명(예,남원이 전북인지 전남인지. 철원이 경기도진 강원도인지) 정확한 이름, 그리고 한자,특히 돈과 통계숫자의 잘못은 프로그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수 있음.


4 MC,리포터,출연자가 생방송일때 사용하는 말이 시청자들에게 상처나 불쾌감을 줄수있는지,상대방의 인격권과 명예훼손,초상권을 침해하지않는지,악의적인 의도를 경계.


5.지적소유권,저작권...철저히 체크 또 체크.


6.TITLE,CM,SUPER는 확인 또 확인.


7.MC,리포트,출연자의 머리,의상,분장,엑세사리 특히 의상 모자등에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간접광고 철저히 체크요망.
프로그램은 PD자신의 얼굴,좀스럽고 피곤하지만
확인하지않았을때 치명적인 결과가 온다.
프로그램의 생명, 프로그램의신뢰와 기대감,PD의
자존심과 명예는 영원히 사라진다.
시간과의 끝없는 전쟁을 각오. AM.5:54 ON AIR
TITLE START...ALL STAND BY,AM 7:00 시보 체크,
그 전에 NEWS HIGHLIGHT시간 체크 VCR START!...AM 8:25분
끝 TITLE 체크...휴_오늘도 무사히...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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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가 가져야할 생각

 

"PD는 고함지르고 어깨에 힘 주고 자가용 타고 다니는 폼 나는 직업이 절대 아닙니다.
프로듀서는 빌고 또 빌고, 참고 또 참아야하는 영원한 약자 중의 약자예요"
프로듀서들은 주인공의 가슴열기에 갖은 애를 다 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자신도 미처 모르는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 MBC 유창영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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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PD의 글



방송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내가 일하는 방송사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쏘아대는 대국민 선언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위치한 또 다른 방송사에서는 더욱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만나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얹어줌으로써 진정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어릴 때 나는 꿈을 꾸었고 지금 나는 그 꿈을 해석한다. 내가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대국민 선언"을 한 것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 교내신문을 통해서였다.

「나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나는 내가 꿈꾸는 미래상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것은 한국의 페스탈로치가 되는 일이었다. 그 목표는 다시 대학교 삼학년 때 배운 교직과목에서 그가 말한 "학교에서 배운 도덕의 부스러기는 도랑을 건널 때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교사가 채워준 사랑의 향기는 끝내 스러지지 않는다"를 들으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지금 나는 내 꿈의 변화에 대해 변명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모교의 교사가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꿈을 실현했고 따라서 '꿈결처럼 행복한 나날들'을 체험했다. 입영통지서를 받은 날은 수업도중 제자들과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논산훈련소에선 하루에 수십 통의 편지를 받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다시 찾은 교정에서 나는 나의 돌아갈 자리가 비어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내가 초가을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의 광화문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꾼 벽보 한 장이 지금의 경향신문사 외벽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PD니 기자니 아나운서니 하는 방송직종보다는 그들을 뽑는 시험과목의 면면이었다. 국어, 영어, 상식, 그리고 작문이 일차 시험과목이었던 것이다. 국어교사 출신에다가 현역 카투사 (미육군에 배속된 한국군), 게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교내 백일장을 휩쓴(?) 전력은 망설임없이 원서 한 장을 받아들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나의 「TV 인생극장」을 장황하게 펼쳐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이십 년간 품어온 꿈의 변질(?)에 대해 해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나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일이 내 꿈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페스탈로치가 되고 싶었던 것은 나의 말을 들어줄 선의의 사람들 앞에 앉기보다는 서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들이 호의를 가지고 나의 표정과 언어에 대해 주목하게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법에 도가 터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의 전달에 지루해하는지에 대해서도 감이 잡혀 있었다. 인기교사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시간은 나를 이의없이 인기교사로 만들어 주었다. 인기는 거품과 같지만 그 거품이 철학을 만날 땐 대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임권택 감독이 세속의 인기를 얻은 후 [서편제]를 만듦으로써 '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임을 환기시킨 일이나 서태지가 광풍과 같은 인기의 힘으로 교육 (「교실이데아」)이나 통일 (「발해를 꿈꾸며」) 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메시지를 던진 것처럼 말이다.

교사시절의 나는 TV나 영화, 가요 등의 대중문화 자락들을 교묘하게 - 아니 사실은 노골적으로 - 교재로 이용했다. 그것은 학습 동기유발뿐 아니라 학업 성취면에서도 눈부신 결과를 가져와서 내가 가르친 과목의 전국학력평가고사에서 내내 수위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교육계는 유능한(?) 교사인 나를 놓쳐버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교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교사는 관객을 사랑하는 배우이다. 배우는 자기애에 빠져 연기에 탐닉할 수도 있지만 교사는 그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 사랑이 없는 교사가 선 강단은 사랑이 없는 배우가 선 무대보다 위험하다. PD는 시청자를 선의의 학생으로 둔 교사에 비길 수 있다. 프로그램은 물론 그의 교재이다. 얼핏 느끼기에 교육방송을 연상하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학생을 진정으로 쉴 틈없이 학생들의 관심도를 체크할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흥미로워하는지, 어떤 정보가 그들에게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부단히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방송이 재미있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반발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수업에 대해 '점잖은 것' 혹은 심지어 '경건한 것'이라는 시선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점잖고 경건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수업이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만큼은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지루함이 주조를 이루는 시간의 틈바구니에는 정보가 새어 들어갈 여유가 없다. 감동과 깨달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즐거움이 먼저고 깨달음이 나중이라는 게 아니고 그 둘은 대체로 사이좋게 함께 온다는 이야기다.

내가 처음 방송사에 들어가 맡은 과목(프로그램)은 「장학퀴즈」와「모여라 꿈동산」이었다. 제자들을 교실 밖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주저함 없이 「장학퀴즈」를 지원하게 했고 「모여라 꿈동산」은 별책부록으로 맡게 된 것이다.

나는 시험문제 출제를 대단히 즐기는 편이다. 교생실습 가서도 애원하다시피 하여 중간고사 국어시험을 출제한 전력이 있다. 나는 사내 도서실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직접 문제 내는 일을 도맡았다. 나중엔 전문출제위원들이 서운해할 정도였다.



「모여라 꿈동산」에서는 나의 소박한 주특기를 뽐냈다. 나는 중학교 삼학년때부터 자칭 싱어송라이터였다. 내친 김에「모여라 꿈동산」의 주제가를 작사 작곡해 버린 것이다.

"숲길을 돌아 구름을 타고
꿈동산에 왔어요.
새들은 날아 꽃들은 피어
노래하는 꿈동산
하늘 아래 땅 위에 모두가 친구죠
아무라도 좋아요
꿈동산엔 담장이 없으니까요."

1983년 가을부터 무려 4년 동안 이 노래는 전국에 메아리(?)쳤다. 지금 이십대의 젊은이치고 방송에서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터이기 때문에 나는 대화 도중 분위기가 서먹해질라 싶으면 나의 이 '화려한 이력'을 슬며시 들추어보임으로써 그들의 눈을 둥그렇게 만들곤 한다.

이 노래 외에도 "즐거운 일도 우린 같이, 괴로운 일도 우린 같이"로 시작하여 "같이 있는 사회, 가치 있는 사회"로 끝나는 영상음악 캠페인의 주제곡과 "꿈바람 부는 대로 흐르는 세상 뭐 신나는 게 없을까"로 출발하여 "이제는 떠나야지 꿈들을 찾아"로 마무리한「퀴즈 아카데미」의 주제음악 또한 나의 자작곡이라는데 이르면 예외없이 작은 탄성이 새어나곤 했다.

어느 분야이건 '스타'가 되려면 - 반짝스타가 아닌 나름의 이름에 값하는 - 대충 네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는 게 나의 체험에 입각한 지론이다.

첫째는 재능이다.
재능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결론지어 말하면 교육이 설 자리가 비좁아질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남다른 재능 하나씩은 갖고 태어난다고 보는 입장이다. 교육은 그것을 끄집어내어 세상 사는데 힘이 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스타의 힘은 매력이자 설득력이다. 따라서 대중의 눈을 끌 수 있는 용모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언어와 태도는 필수적이다. 방송사의 PD는 평범했던 사람을 발견 혹은 발굴하여 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역할이므로 적당한 심미안과 예지력(?)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그것들 대신 주머니를 채우려는 욕심과 통속의 욕망들을 해결하는 데 자리를 이용하려 한다면 그의 끝은 허망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는 구속되거나 - 5년 주기로 PD구속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 명예롭지 못한 자로 대중문화사에 기록될 것이 뻔하다.

두 번째로 스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용과 열정이다.
재능은 있는데 의욕이 없는 경우는 어느 분야에서고 정상에 설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의욕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세계에 접근하기 위한 정보획득 욕구를 포함한다.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나무 밑을 서성대는 자와 사과나무를 힘껏 흔들어 사과를 주워담는 자의 미래는 사뭇 다를 것이다.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재능은 평범하거나 부족한데 "한번 기회를 준다면 정녕 잘 해낼 수 있다"라고 호소하는 스타 지망생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찾아가 서울대에 입학만 시켜준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노벨상을 타겠다고 약속할 때 총장이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마땅한 지 생각해 보라. 힘든 과정을 생략하고 곧장 꼭대기에 오르는 게 옳은 일인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을 하나하나 걸어서 십 층까지만 올라가 본다면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운이다.
운은 행운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스타에게 어떻게 오늘날의 위치에 서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운이 좋았다'고 고백한다.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솔직한 자기 성찰이기도 하다. 그날 그 자리에 내가 '우연히' - 실은 운명적으로 - 가게 되었기 때문에, 혹은 그날 그곳에서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오늘날의 내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날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얼마만큼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는 나쁘지만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자는 어리석거나 가엾다.

「모여라 꿈동산」주제가를 만들게 된 배경도 내게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할 만큼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게 된 PD가 AD(조연출자)인 나에게 "지금 주제가는 너무 맥이 없는 것 같아"라고 지나가는 말로 불평했을 때 "그럼 제가 한 번 그 맥을 찾아볼까요"라고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 노래는 세상에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업을 할 때 칠판 가득 자작곡의 가사를 써놓고는 옆반 선생님의 눈치까지 받아가며 나는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연전에 라디오 프로그램「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스승의 날 특집으로 영화배우 최민수와 나를 전화 연결한 적이 있다. 그가 나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선생님은「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과 같은 분이셨죠. 그때 가르쳐주신 노래들은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PD로서는 비교적 많은 양의 글을 쓰게 된 사연도 실상 작은 '기회'에서 비롯되었다. 회사 내의 홍보지인「MBC 가이드」에서 언젠가 내게 짧은 영화평을 하나 의뢰한 적이 있다. 국문과 출신이긴 하지만 글을 써서 발표하는 일에는 엄청나게 주눅들어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이런 위기 - 그것이 기회다 - 에 봉착한 것이다.

나는 부탁한 이에게 "영화평은 못 쓰겠고 가요평이라면 한 번 써볼 의향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대던 그는 "그럼 한 번 써보라"고 제의했고 나는 초등학교 사학년 때부터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한국대중가요에 대한 나의 견해를 원고지 칠팔 매에 피력하고 만 것이다.

내가 처음 쓴 글의 제목은「개똥벌레의 세계인식」이었다. 그 글의 처음을 지금도 나는 외고 있다. "노래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격화된 개똥벌레를 통해 비극적 세계인식의 한 단면 - 내가 보기에 개똥무덤은 이 시대 우리 삶의 실존적 모습이다 - 을 보여준 한돌 (「터」「불씨」「유리벽」「조율」등을 만들었다)의 음악세계를 조명한 글이었다.

졸지에 나는 연재물의 작가가 되었고 신문사에서 정기필자 의뢰까지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주철환 프로듀서의 숨은 노래찾기」라는 제목의 책은 그때 줄기차게 써댔던 글들이 모여져 나온 것이다. 그 후로 나는 '프로그램 하나 할 때마다 책 한 권'이라는 계획 아래 몇 권의 책을 더 냈고 그 일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글은 나를 반성하게 하고 또한 조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옛날의 글들을 읽으면 '그때 내가 이렇게 순진무구했구나' '그땐 왜 이런 사소한 일로 괴로워했지?'하며 스스로를 추스르게 된다.

스타를 만드는 네 번째 요소는 엄정한 자기관리다(자기가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 관리인을 두는 것이다.) 재능과 열정과 행운으로 어렵사리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낙오하는 운석과 같은 존재를 너무도 자주 보게 된다.

스타는 대중이 그들을 지켜보기 때문에 스타인 것이다. 대중은 정직하다기보다 솔직하다. 대중에게 비쳐진 이미지가 아름답고 영속적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쉽게 스타에게는 사랑받은 책임이 부가된다. 그것을 소홀히 한 스타는 가차없이 은하계에서 추방된다. 그리고 잊혀지는 것이다.



좌우명은 아니지만 나는 이따금 '재미있게 살고 의미있게 죽자'는 말을 되뇌인다. 방송은 때로 피를 말리는 일이지만 그대로 방송은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제작에 참여한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PD의 자아도취는 예견된 수순인 것이다.

이따금 PD만 즐거웠지 시청자는 도무지 즐겁지 않았다는 배반의 결과가 PD들을 또다른 의미의 흥분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이 '공부 열심히 했고 시험도 잘 보았는데 성적이 왜 이렇지'하는 모습과 시청률표를 받아든 PD가 '아이디어도 좋았고 프로그램도 열심히 만들었는데 시청률이 왜 이렇지'하는 표정은 매우 닮은꼴이다.

프로그램은 상대적이다. 인간의 성에 비긴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자위행위로는 결코 생산(생명의 탄생)에 이를 수 없다. 사랑이 없는 성행위로는 진정한 기쁨에 이를 수가 없다. 매춘 뒤의 허탈함을 상상해 보면 알 것이다. 일시적 쾌락의 반복적 생산(프로듀싱)이 지금 방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그릇된 경쟁의식은 멀리, 그리고 높이 내다볼 수 없게 하는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생명의 탄생에는 사랑과 시간이 필요하다. 시청자를 진정 사랑하지 않고, 또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고는 결코 훌륭한 프로그램을 생산해낼 수 없다.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고 또한 기쁨 주고 사랑 받는 관계가 되려면 만나기 전에 좋은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순간의 쾌락보다는 은은한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방송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주철환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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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연출과 조작의 경계 조회수 | 3
작성일 | 04.04.03








'선암사의 비밀' '게' '한국의 패류', '버섯, 그 천의 얼굴' 등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윤동혁프로듀서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연출과 조작의 경계
윤동혁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제작하며 보냈던 시절은 여러 가지로 행복했다.
소백산 달밭골에서 평생 송이버섯을 따며 신선처럼 사시는 박기운 할아버지,

눈속임 으로 쌈짓돈에서부터 소 판돈까지 긁어내는 야바위 4인방, 미혼모의 아이
들을 키우는 희문스님... 타인의 인생 속에 그처럼 깊이빠져들었던 일은

그때평생 휴먼다큐멘터리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
는 요즘도 만약 인간 이야기를 정규편셩해 준다면 언제든지 돌아가려고 한다.
인간시대팀이 그때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찬사는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
한다는 것이었으며 지금도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뽑아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참으로 당혹스런 찬사이며 질문이다.


'진솔하다' '있는 그대로의 삶' 이란 표현은 '연출이 개입하지 않은 무공해 작품'이란 말고 같은 의미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출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연출자가 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이란 단어는 진실의 재구성이나 창조적, 예술적
영상을 만들어 내는 제작자의 역량을 말할 때뿐 아니라 무언가 꾸며내는, 일종의조작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쓰여졌다. '저거 다 연출한 거야'라는 말은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스트에게 모욕이었다. 그런데 [인간시대]는 연출 없이 진솔한 삶을 보여준다고 하니 그 프로그램을 만든 프로듀서로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시대]에서 연출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하루 세 끼 밥먹고, 제 할 일 하고,잠자는 일이 전부이다. 일주일 남짓 촬영해 봐야 그저 그런 평범한 생활의 나열이 될 뿐이다. [인간시대]를 보고 펑펑 울었다거나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은 듣기 힘들 터였다.


어떤 프로그램에도 연출은 개입한다.
[인간시대]의 경우 '재연'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환경을 잘 표현하기
위하여 프로듀서는 그의 연출력을 총 동원한다. '야바위 4인방'을 예로 들어보자.야바위도 인간인지라 심란해지면 소주 마시고 찔끔찔끔 울기도 한다. 어린 딸이 전화로 "아빠 언제와?"하고 물어보면 제아무리 흉악한 인간이라도 가슴이 '싸'해지기 마련이고 그런 날 밤에는 포장마차 한 구석에서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자조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야바위꾼 입으로 직접 듣게 되면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현장의 프로듀서는 '연출'을 지시한다. 우선 어린 딸에게 아빠의 거처를 알려주고(물론 야바위꾼 가족은 그들의 가장이 그런 나쁜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전화를 걸게 한 후 그 반응을 살펴본다. 그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술판을 벌인다.
"오늘 촬영 안할테니 술이나 실컷 마시자." 소주병이 여관방에 질펀하게 깔리고
누군가 말한다.
"참 우리가 나쁜 짓 많이 했어. 소록도 나병 환자들 돈까지 털어 먹었잖아"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손을 놓아야 할텐데..."
이 때 누군가 방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누가 이 판에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는 거여."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이 때쯤 연출자는 당초의 약속을 깨고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인간시대]의 모든 장면들이 이러한 연출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촬영하다 보면 프로듀서의 머리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장면들이 카메라에 잡히
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을 잘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거짓에 근거하지 않은
연출은 언제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연다큐멘터리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나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수시로 자연을 유리
상자 속으로 옮겨 촬영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공개하겠다.


게들의 짝짓기


갯벌에 나가 보면 가끔 방게가 짝짓기하는 모습을 볼 수있다. 이놈들은 좀무뎌서 사람이 접근, 손으로 집어 올려도 암수가 뒤엉킨 채로 교미행위를 지속한다.그런데 갯바위에 사는 종류는 한밤중 인적이 끊긴 곳에서만 짝짓기를 하며 15m 이내에 사람이 어늘거리기만 해도 교미자세를 풀고 순식간에 돌 틈새로 숨어버린다.


이놈들의 짝짓기를 촬영하기 위해 제주대 해양연구소에 120cm X 40cm의 유리
수조를 설치하고 바위게들을 포획해서 집어넣었다. 물론 바위게들의 생활환경과
흡사하게 돌과 바다풀을 잘 배합, 누가 봐도 실제 풍경인 듯 꾸몄다.
그러나 이렇게 꾸며 놓았다고 해서 그놈들이 즉각 짝짓기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 조명 불빛에도 돌멩이 뒤편으로 숨어버릴 뿐 아니라 생체시계의 지시에 따라 한밤중 또는 새벽에만 짝짓기를 하므로 스탭들이 당번을 서가며 며칠 밤을 새우고서야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바위게들의 짝짓기를 '있는 그대로' 찍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호히 '불가!' 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풀게의 민가 침투
풀게는 집이 없다. 농게, 칠게, 콩게 등 갯벌에 사는 종류는 펄 속으로 구멍을
파서 집을 만들며 달랑게와 엽낭게는 바위틈새로 들어간다. 풀게는 돌 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사는데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면 바다 밑의 돌들도 굴러다니기 때문에 장마철을 앞두고 피난을 간다. 그 피난처가 인근 마을의 민가들이다.
하동 망덕마을 사람들은 장마철에 집안으로 숨어드는 이 풀게들을 퇴치하기 위해 '에프킬러'를 뿌리기도 한는데 밤에 이부자리 속까지 기어 들어와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말해 주었다.
장마가 시작될 즈음 망덕마을로 갔다. 이미 풀게들이 민가나 쓰레기통, 부엌,
심지 어는 천장에까지 올라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 말로 '개미처럼 떼지어 기어
들어오는' 장면은 이미 놓친 것 같다. 나는 동네사람들과 함께 풀게를 채집해서
마을 입구에 풀어놓았다. 게는 이럴 때 본능적으로 바다쪽을 향하는 법인데 90%
정도가 민가 쪽으로 기어갔다. 이때 스탭 중에서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조작이다."
카메라맨이었다. 그는 자연다큐멘터리를 이따위로 찍는다는 것이 자라나는 아이
들 보기가 부끄럽다고 했다. 나는 그의 순수한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풀게들을 강제로 집안으로 몰아넣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주일이 걸리든 열흘이 걸리든 기다렸다가 자연상태에서 풀게들이 집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장면을 촬영하자'는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
이 논쟁은 카메라맨의 이야기가 백번 옳은 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다'는 나의
주장에 밀렸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해봐라." 나는 카메라맨을 설득하려고 했다.
"거미줄에 나비가 걸려서 발버둥 치다가 결국 거미밥이 되고마는 장면을 찍는다고 하자. 나비가 거미줄에 걸려 있는 것은 흔히 보지만 나비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그 순간을 눈으로 보기는 힘들다. 하물며 카메라로 잡으려고 할 때는 오죽하겠는가.그래서 천하의 BBC나 NHK도 나비를 잡아서 거미줄에 걸리게 한 후 그 때부터 카메라를 돌린다고 하더라. "열심히 설득했으나 카메라맨은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또 다시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기다려서 자연의 참모습을 찍으라'고 한다면 단호히 '불가!'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전복의 방정방란


대부분의 패류는 자웅이체로 산란기가 되면 난자와 정자를 뿜어낸다. 수백만 개에서 수억개에 달하는 난자와 정자가 바다 속을 떠돌다 서로 만나 체외수정을 하고 유생 시기를 거쳐 조개가 된다. 이 방정, 방란 현상을 유리수조에서 촬영했다. 반자연적 연출의 불가피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가능하면 전복이나 굴, 가리비가 자연상태에서 방정, 방란하는 모습을 촬영해야 옳다. 그러나 10년 이상, 술꾼 포장마차 들르듯 바다 속을 쏘다닌 다이버들조차 자연상태에서 패류가 난자와 정자를 뿜어내는 장면은 한 번도 못봤다고하는 이가 많다. 프로급 다이버가 산소통을 메고 물속에 들어가서 버티는 시간이 대략 30분,


하루 세 번 잠수한다해도 90분밖에 관찰할 시간이 없다. 운이 좋으면 열흘쯤 들락거려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물 속에서는 작은 물체를 확대해서 찍는 접사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복이나 굴, 피조개는 정자와 난자의 모양이 틀리다. 정자는 일반적으로 담배 연기처럼 부옇게 흩어지고 난자는 아주 미세한 알맹이로 퍼져나간다. 이것은 눈으로 감지하기도 어렵고 105mm 또는 60mm 마이크로렌즈를 사용해야 선명하게 보인다.
물 속에서는 이런 특수렌즈를 사용할 수 없다. 우리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패류의 산란장면을 자연상태에서 목격했다 하더라도 정자와 난자가 구별되는 선명한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수조촬영을 선택한다.
어떤 기자가 '수달파문'을 기사화할 때 " BBC나 NHK같은 공영방송은 세트촬영
사실을 반드시 표기한다"라고 썼는데 나는BBC, NHK, ZDF,내셔널 지오그래픽...
그 어떤 자연다큐멘터리에서도 세트촬영임을 밝히는 자막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수달파문'때 프로듀서 생활을 한 이래 가장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내가 한 이야기는 거의 실리지 않았다. 나는 신문기자들이 '모범적인' 예로 들고 있는 BBC나 NHK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BBC가 박쥐에 관한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제작진이 가장 흥미를 가진 것
은 박쥐가 캄캄한 밤에 지그재그로 날며 어떻게 먹이를 포획하는가 였다. 자연상태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그 장면을 촬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사람의 눈에도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밀폐된 공간에서 완벽하게 조명을 맞춘 다음 특수 고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파리나 모기 따위의 먹이를 던져 주면서 촬영하는 것이다."
밤에만 활동하는 박각시나방이 공중에서 정지한 채 꽃의 꿀을 빨아먹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자연다큐멘터리는 자연상태에서만 촬영해야 한다고 하면 BBC나
NHK는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문 기사대로 세트촬영임을 꼭 밝힌다면
신비한 영상의 컷마다 '이것은 유리수조에서 촬영한 것임' '이것은 시골 초등학
교의 빈 교실에다 세트를 만들어놓고 촬영했음'이라고 일일이 자막으로 처리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연출자가 제작 후기에서나 밝힐 일이다.

나는 '연출'과 '조작'의 거리를 열정과 욕심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둘은 겉으로 보아서 잘 분간할 수 없다. 열정은 "내가 지금 촬영하고 있는 저 대상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욕심은 "내가 지금 촬영하는 저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다.
후자일 때 연출자는 탐욕으로 눈이 흐려지게 된다. 뱀을 자루에 넣어 싣고 다니다가 적당한 상황을 설정, 풀어놓는 일이 있고, 심지어는 외국에서 방송된 화면을 자기가 촬영한 것처럼 도용한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서 물었다. "자연다큐멘터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것은 양식의 문제이다. 가이드라인을 설정한다 해도 수많은 개체의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상징적 선언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다큐멘터리는 가능한 한 자연상태에서, 촬영대상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세트촬영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노우하우도 방송선진화에 포함되어야 한다.

'수달파문'에 대하여 나는 세밀한 내용을 아는 바 없으므로 이것은 옳다 저것은
그르다 말할 수 없으나 연출자가 '열정'과 '욕심'이 더러는 혼재된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을 맹렬히 비난한 신문기자들 또한 자연 다큐멘터리에 대한 애정은 접어둔 채 "자연상태에서 촬영하지 않은 것은 모두 나쁘다"는 흑백논리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만약 수달의 무리가 그들 때문에 야기된 이 사건의 전말을 모두 지켜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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