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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과 후미코 초대박 배우 최희서

문경에 박열 의사 생가와 박열 의사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리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었던 얼마나 많은 의인들을 우리는 잊고 사는가?

이것이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 나에게 던진 강렬한 메시지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열 의사 생가.


이준익 감독의 박열과 김기덕 제작자의 포크레인,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까지 대한민국 영화계는 행복하다.

블랙리스트가 사라진 문재인 정부 들어 항일 운동, 5.18 민주화운동을 그리는 다양한 시각의 영화가 개봉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준익 감독의 창작열을 불 태운 사진, 이준익 감독으로 하여금 박열 의사가 후미코 씨의 가슴을 만졌다고 발칙한 상상을 하게 한  바로 이 사진.

이 사진 한 장에서 박열의 독특한 캐릭터와 사랑스러운 후미코 씨는 다시 탄생한다.



보통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안경을 쓰고 한복을 입거나 장엄한 분위기와 신념에 찬 모습으로 기억되거나 사진 찍힌다.

하지만 사진 속 박열 의사는 일본인 여성과 매우 섹시한 포즈로 당시에는 파격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런 불협 화음의 호기심이 박열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게 했나 보다.


사진= 영화 박열, 이제훈, 최희서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열 의사.



과연 박열 의사의 얼굴 또한 사회주의적이며 아나키스트적이다.

이런 캐릭터 강한 독립 열사를 부드러운 이제훈이 소화해낼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제훈은 해냈다.

과연 이제훈, 과연 이준익 감독이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발랄한 영화 박열.

대체 발랄이란 단어를 독립운동가를 그린 영화에 붙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박열 의사는 그렇게 그려진다.

특히 박열 의사를 만들어낸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 씨.

영화 제목을 후미코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박열을 송두리째 좌지 우지하는 매력의 소유자가 후미코 씨다. 

배우 최희서, 도대체 누구인가?


스크린을 들었다 놨다, 박열을 들었다 놨다하는 매력의 소유자.

이준익 감독이 만들었다 하기엔 이미 완성된 배우의 느낌.

도대체 어디서 봤는지 머릿속을 뒤집어 찾았는데 모르겠다.


영화 옥자


영화 옥자에서 살꼭대기 올라온 촬영팀의 통역사다.

이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쿠미 역을 맡았다.



나이가 들어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귀여운 소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최희서.

최희서는 신인 배우가 아니다.

최희서 나이는 1987년 1월 7일, 30세.

2005년 MBC 레인보우 로망스에 단역 출연, 그리고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서여순 역할을 했다.

킹콩을 한다 출연자들 중에서 최희서를 한 번 찾아보라!!!




누가 최희서일까?

믿기 힘들겠지만 최희서는 맨 오른쪽 짧은 머리의 소녀다.



이후에도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영화 박열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최희서는 한국인이지만 유년기를 일본 오사카에서 보냈고 한인 초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중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대학은 연세대학교를 다녔다.

연세대에서 제2외국어로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어까지 배워서 5개 국어를 하는 배우다.




연기부터 언어까지 모든 것이 준비된 최희서의 앞날이 기대된다.

최희서가 연기한 후미코 씨는 종속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실제로 박열 의사는 1923년 도쿄에서 6천여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맞서 싸운 무정부주의자였고 그의 동지이자 연인이 후미코였다.


영화 박열 후미코 역 최희서


후미코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다.

사실 영화적으로 후미코가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다.

일본에서 부모의 무관심으로 출생 신고도 못하고 무적자(無籍者)라는 이유로 학교도 못가고 한국 고모 집에서 할머니에게 학대 당하며 학교를 다녔고 3.1 운동을 목격한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자신을 술집에 팔아넘기려는 상황에서 도쿄로 도망간다.

도쿄에서 신문 배달을 하고 어묵집 점원으로 일하면서 도쿄에 유학중인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힘겨운 인생을 살았던 후미코는 아나키스트가 된다.

1922년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영화를 못보신 분들을 위해 이후 이야기는 생략.


역사적으로 박열을 어떻게 평가할지 여러 논란적인 요소가 분명 존재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힘든 상황들이 있다.

불령사라는 비밀 결사 조직 사건이 조작되고 과장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2년 2개월 동안 감옥에서 살았던 것이 사실이고 이후 1946년 김구 선생의 부탁으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 발굴 봉환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되면서 박열 의사는 더욱 더 후세들에게 잊혀졌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런 박열 의사를 소재로 독특한 스토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해준 이준익 감독에게 감사하다.



박열 의사 재판


영화 박열의 최종 관객수는 235만명이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더한 흥행을 끌 수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흥행으로 직진하는 전략은 아니다.

그의 영화는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흥행을 위해서는 더 익숙하고 더 클리셰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색깔을 유지하고 메시지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2루타, 3루타를 날리고 있는 것이 홈런을 치는 감독들보다 훨씬 아름답다.

또한 제작비를 115억 정도 투입한 영화 리얼이 47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에 비하면 25억원 정도의 제작비를 쓰고 23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은 장외 홈런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고, 초대박 배우 최희서의 차기작 '아워 바디'를 응원한다.


가네코 후미코 무덤 앞에서 

최희서 SNS 


“I got you a fine sake this time. 꽃을 가져와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 하쓰요가 준 사케 가져 왔어요”

댓글 1

  • 게스트 썸네일
    여름
    2017.08.10 05:05 신고

    이 영화 막강 캐스팅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긴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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