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개론/약간 이상한 사진강좌

CULTPD 사진강좌#33. 보도사진과 밀착의 이해 (매그넘 컨택트시트 리뷰)

GeoffKim 2011. 10. 10. 06:30

제목이 괜히 좀 어려운 것 같은데요...
언제나 그렇듯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읽어두면 좋을 듯한
글을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사실은 사진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두가지로 생각할 때
그 중 한가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지만
중요하다고 하면 지루해지니까 그냥 편하게 읽어주십시오.

아마... 재밌을겁니다. ㅋㅋㅋ




얼마 전 <매그넘 컨택트시트>라는 책이 전세계 동시출간됐습니다.






국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이 있습니다.
시대를 이끄는 사진작가들이 매그넘과 함께 합니다.

이 책 안에는 놀랍게도...!!!
매그넘 대표 사진가들의 밀착 인화지가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책의 가격이 18만5천원이지만 바로 결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유명 작가의 밀착 인화지가 들어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밀착이 뭐냐하면

Contact Sheet (contact print) 밀착인화 [ 密着印畵]
사진인화지의 막면(膜面)에 네거의 막면을 밀착하고,
네거를 통해서 노광(露光)하여 현상함으로써 얻어지는 인화.


쉽게 얘기해서 현상한 필름을 크게 한장, 한장 인화하지 않고
촬영한 여러장의 컷이 연결되어 있는 필름 자체를 인화하는겁니다.





어떤 사진관에 가면 서비스로 밀착인화를 해주기도 하는데
그 밀착인화지에 '어떤 사진을 몇장 뽑아달라'고 표시해서 주면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겠죠?

그 원리가 바로 밀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밀착의 필요성이 없어졌지만
아날로그 시대에는 작가가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고 구성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물론 요즘에도 몇몇 사진가들은 오케이 컷을 모아서
밀착 형태로 사용자에게 미리 보여줍니다.

저도 윤계상씨 화보작업을 할 때 작가로부터 밀착 이미지를 받았는데
사진을 고르기 편했습니다.
사진을 한장, 한장 줬다면 용량도 어마어마하고 비교하기도 쉽지 않았을겁니다.

 




이것이 바로 밀착의 개념입니다.
요기까지는 재미없지만 이제 재밌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과거 유명한 사진작가들, 특히 매그넘 작가들의 밀착을 구경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작가가 역사적인 사진 한장을 어떻게 찍었는지 그 전후 상황을 알 수 있으며
여러 사진 중 어떤 사진을 고르는가를 공부할 수 있겠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여러분들이 촬영한 원본을 누군가가 구경하자고 한다면
우선 잘못 찍힌 사진까지 들키게 되고
후보정 전, 날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
상당히 민감할 수 있고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의 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밀착 인화지뿐만 아니라 작품으로 선별된 사진 이외에는 모두 폐기처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밀착 인화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밀착인화지는 지워버릴 것과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사진전시회나 사진집은 만찬 초대장과 같다.
따라서 손님이 솥이나 팬, 혹은 심지어 음식껍질 바구니에
코를 들이밀게 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는 앙리카르티에브레송재단이 원래 그가 촬영한 순서대로 추정하여
재구성한 밀착인화지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모든 사진을 제대로 자세히 보여드릴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꽤나 가슴 뛰는 전율이며 흥분입니다.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명작 사진이 연출된 것인지, 기다림 끝에 얻어진 것인지,
순간 포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던 조지 로저는
밀착 인화지 뒷면에 타이프로 빽빽히 사진 설명을 붙였습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사막의 여정'이라는 책이 등장합니다.





작가들이 직접 색연필, 펜 등으로 OX표시와 화살표를 그려넣은
밀착인화지를 보는 것은 작가를 간접적으로 만나는 듯 꽤나 흥미롭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 사진의 의미에 대해 언급해보려 합니다.



좋은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요?
두가지로 나뉩니다.

방송을 예로 들면
크게 엔터테인먼트적 속성으로 제작되는 예능과 드라마가 한분류이고
정보와 뉴스 제공의 가치로 제작되는 보도와 교양이 한분류가 되겠습니다.

사진도 똑같습니다.

예쁘고 멋지고, 감동적이며, 재밌는 사진이 있다면
역사를 기록하고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의미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가 침의 다음 작품을 한번 보시죠.



 

스페인 노동자 집회에서 연설을 듣고 있는 여인.
실제 밀착인화지를 보면 더 루즈한 샷이었는데
여인을 강조하기 위해 과감하게 크롭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과 노인의 모습도 멋지지만
침은 이 사진을 선택했고 과감히 주변 인물들을 크롭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눈빛을 살리고 수유하는 모습을 살린채
메인 포커싱은 여인의 표정을 향합니다.

더군다나 여인의 한쪽 뺨에 핀조명을 쏜 듯, 자연광이 빛납니다.

실로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에 실린 해석을 보면
어쩌면 역사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고
적혀 있습니다.



토마스 횝커의 911 테러사건 사진을 한번 보시죠.






무역센터가 무너진다는 소식을 듣고 토마스 횝커는
자동차로 급하게 내달리다가 강 건너에서 젊은이들이 앉아있는 한 컷을 찍었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은 B컷으로 분류되어 3년간이나 박스 속에 있었는데
이후에 그날의 사진으로 유명해진 사진입니다.






평화로운 뉴욕에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표현한
이 작품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연출의 냄새가 난다는 뭐 그런...
책에 수록된 컨택트 시트를 보면 이 사진을 찍기 전 젊은이들은 분명
빌딩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조작이냐,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전 조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커다란 비극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사진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좋은 사진은 그 장소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분위기 등 역사의 한장면을
어떤 피사체를 통해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사진 작업은 작가가 글을 쓰듯
감독이 영화를 찍듯, PD가 방송을 만들고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듯...

생략과 대비, 색감과 화각 조정, 강조와 왜곡등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작가의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틴 파의 '마지막 휴양지'라는 작품은
리버플 인근 위럴반도 어귀의 쇠락하는 해변휴양지를 취재한 사진입니다.

사라지는 휴양지의 모습을 이토록 강렬하게 담을 수 있을까요?

사진이 아름답고 예쁘고 장엄한 것을 담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꼬옥 해보고 싶었습니다.




혁명가 체게바라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

멋있고 예쁘게, 뽀샤시하게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체게바라의 어떤 느낌을 찍어야하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르네 뷔리는 체게바라의 이상주의자적 이미지, 그의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표현하고 싶었을겁니다.







이 책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70년간 매그넘 보관소에 보존됐던 밀착인화지들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사진작가들이 어떤 피사체를
효과적으로 찍으려는
그러한 노력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찍고 싶어하는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아마추어에서 작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순간은
피사체를 찍는 것에서 메시지를 찍는 것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과정의 고통과 환희가 그대로 느껴지는 멋진 책입니다.







매그넘 컨택트시트
크리스텐 루벤 편집, 김동규 옮김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