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남편을 잃고 악마가 된 김미숙.
27년을 준비한 복수다.
김미숙이 악인인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는데... 그리고 아들을 지켜야하는 엄마다.
욕할 수 있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사청자와 기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돈과 권력 앞에서는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고수가 갑자기 너무 오버하는 것이 어설프다고.
하지만...
틀렸다.
황금의 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극단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고수는 아버지를 잃었다.
손현주가 저지른 철거 현장에서 고수의 아버지는 불에 타 죽는다.
그리고 고수는 손현주와 손을 잡는다.
그가 갑자기 장신영때문에 악마가 됐다고?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여자가 온몸을 던져 남자를 지켰는데 남자는 오히려
여자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운다?
과연 말이 안될까?
상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걸 잃어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
이슬비가 내려 비에 젖으면 비를 피하게 되지만
온몸이 흠뻑 젖어버리면 비를 피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이성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손현주도, 이요원도 마찬가지다.
손현주는 아버지와 함께 그룹에서 내몰리고 복수심을 불태웠으나
진짜 복수심은 복수를 위해 병상에 있던 아내를 버리고 은행장 딸과 정략결혼을
해야했던 그 순간의 상처다.
사실 그 상처는 타인이 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상황이 용서 불가능 했을 것이다.
손현주가 제 정신이겠는가?
손현주나 고수나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는거고
자신에게 복수를 하듯 목숨을 걸고 질주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느끼지 못하면 오버라고 보일 수도 있다.
이요원은 아버지를 잃었고 평생을 모시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았던 사람이란걸 알아버렸다.
아버지는 끝까지 이요원을 찾았지만 어머니의 방해로 결국 못 만났다.
오빠와 언니에게도 배신당하고 형부에게도 배신당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흥부와 놀부가 없고 콩쥐와 팥쥐가 없다.
사람이 소중한 것을 잃고 그 분노가 폭력으로도 성에 안차고
언어로도 분이 안풀리는 상황!
그 상황에 모두가 내던져졌고
때로는 점잖게, 때로는 미소를 띄고 얘기하고 있지만
실은 모두 악마가 돼도 상관없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복수는 또 다른 상처를 낳고 상처 난 사람들끼리 또 상처를 나눈다.
자기 상처가 가장 아픈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숨이 막히다.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라 심장이 쪼그라드는 아픔을 느낀다.
극 전반에 흐르는 아픔은 사실 우리의 아픔이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IMF 때 우리 아버지들은 많은 눈물을 삼켰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당시 상처를 받았다.
이 드라마는 상처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기자가 어설프고 느닷없다고 표현했는데
그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어보지 못해서 그럴거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살인자 누명을 씌우고 결혼을 할 수 있냐고
말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성진건설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
돈과 명예를 위한 인간의 욕망?
암투와 배신?
다 틀렸다.
이 드라마는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중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이 아픔을 잊기 위해 뭐라도 해야하고
더 잃을 것이 없으니 결혼을 하든, 살인 누명을 씌우든 큰 의미가 없다.
아픔이다.
아픔을 잊기 위해,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달려가는거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착한 주인공도, 이유없이 악한 욕심쟁이도 없다.
누가 승리해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개운하거나 홀가분하지 않을거다.
그러니 대부분의 시청자는 굿닥터를 보는거다.
굿닥터에는 맹목적으로 착한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에게 마음이 끌리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병원 정치극에서 항상 나오는 라인간의 경쟁이 있고 위기가 있고 극복이 있으며
해피엔딩이 있다.
그런데 황금의 제국은 뭔가?
대부분의 시청자가 바라는, 기대하는 아무 것도 없다.
근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김미숙을 봐도 문득 불쌍하고
김미숙 아들도 답답하며
마지막까지 여동생만 찾았던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장남을 봐도 가슴이 아프고
하다 못해 정한용을 봐도 가슴 아프다.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며
그러니 때로는 악역이 되고
때로는 선한 역이 되는
어쩌면 문학적으로 더 가치가 있을 좋은 대본이다.
더욱 더 질주하는 상황, 보는 사람들만 보고 신드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은 놀랍지 않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주 타깃은 30대 전 후의 여자를 잡아야한다.
30대 전후의 여성에게 인기를 끌려면 일단 입소문을 담당하는 여고생이
보기 시작해야한다.
근데 이거 여고생이 볼만한 내용인가?
게다가 비주얼도 신경 안쓴다.
야외촬영도 별로 없다.
옛날 고석만 연출의 공화국 시리즈가 있었다.
그 때 그 드라마는 촬영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그냥 쉽게 대충 찍었다.
하지만 대본의 힘, 리얼의 힘으로 그 긴장감은 대단했다.
마치 그 때 공화국 시리즈를 보는 것 처럼 연극적이다.
귀신이 눈에 보이는 귀여운 여자도 없고,
긴박한 수술 장면도 없고
딸을 살리기 위해 경찰을 피해 달리는 도망자도 없으며
남의 목소리가 들리는 연하의 남자도 없다.
그냥 무지 막지한 대사와 표정만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드라마,
주위사람과 얘기하고 싶어도 온통 굿닥터 얘기만 하고 있는 현실,
그러다 황금의 제국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엄청 반가운...
묘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 SBS 황금의 제국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