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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아 랭 사진과 40년의 고통, 이민자 어머니 사연과 초상권

카메라/약간 이상한 사진강좌

by 미디어리뷰 2019. 8. 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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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수동성(그리고 편재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메시지이자 사진이 드러내 놓는 공격성이다.

 

수전 손택은 도로시아 랭의 사진을 빌어 사진이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http://naver.me/GmHV7wsW

 

김경만 감독의 사진학개론 초상권과 스트리트 포토

김경만 감독의 사진학개론 | 김경만 감독의 사진학개론 사진전 사진강좌 초상권과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도로시아 랭의 이민자 어머니에서 본 초상권과 고통의 관계 #사진학개론 블로그 https://kimpd.com #김경만감독 페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cultpd 김감독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pdcom 사진학개론 후원 (라이트룸 프리셋/캡쳐원 스타일 선물) https://www.gra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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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도로시아 랭 (Dorothea Lange)

도로시아 랭은 FSA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 농업안정국) 사진기자로 활동할 당시 세계적인 유명 사진을 남긴다.

 

미국의 대공황, 농업 안정국은 미국 농촌의 피폐한 모습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기록할 사진작가들을 모아 미국 전역에 취재를 보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진.

 

이민자 어머니(Migrant Mother),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1936. / The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

도로시아 랭은 이런 말을 남겼다.

 

'굶주림에 지친 엄마와 아이들한테 자석까지 이끌렸어요. 그들을 찍고 있을 당시 나 스스로 손에 카메라를 쥐고 있는 것 느끼지 못했어요.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죠. 배고픈 사람에게..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지 못했는데.. 그녀 스스로 다가와 자신은 32살이며 얼어붙어버린 땅에서 캐지 못한 야채들을 찾으러 나왔다는 말을 했습니다.

주변에 새들이 날아다니자 아이들은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돌에 맞은 새는 이들의 배를 채웠죠.

나는 내가 끌고 온 자동차 바퀴를 뽑아 팔아 이들에게 줄 먹을거리를 샀습니다.

아이들이 허겁지겁 먹고 난 후에도 먹지 않은 엄마는 아이들 몰래 숨겨둔 먹을 것을 저에게 건네며 고맙다는 말을 했죠.

나는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가...

나는 왜 카메라를 들고 있는가...

내 삶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첫째, 주제를 함부로 변경시킨다든가 또는 적당히 손질해서는 안 되고 둘째, 대상은 환경의 일부로서 거기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취급해야 하며 셋째, 대상을 과거와 현재라는 흐름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 도로시아 랭

 

 

 

굉장히 멋진 말이고 이 사진은 미국 농촌의 현실, 이민자의 삶을 조명하여 사회에 변화를 주었고 모성애의 강인함으로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 완두콩 농장에도 어마어마한 구호물품이 답지했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왠지 고통과 강인의 얼굴과 동시에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한 불쾌함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 뒤로 숨은 아이들의 모습도 어떻게 보면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사진 찍히기 싫어서 숨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3천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완두콩 농장에서 일하던 이곳.

여인의 나이가 32살이라는 것만 듣고 6장 정도의 사진을 찍고 도로시아 랭은 현장을 떠난다.

그의 이름이 플로렌스 톰슨이라는 것은 40여 년 후 신문사 기자에 의해 밝혀진다.

그런데 플로렌스 톰슨은 완두콩 농장에서 일하던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왓슨빌로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고장 나서 농장 캠프에 잠시 차를 주차했다고 설명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도로시아 랭이 사진 촬영에 관해 설명하고 어디에 나가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사실처럼 느껴진다.

도로시아 랭의 말에서도 그가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는 눈빛을 보였다는 설명이 있는 걸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구호물품은 물론 구경도 못했고 평생 가난한 모습의 대표 사진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수치스러웠다고 한다.

병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은 고통스러웠던 세월을 안겨준 사진작가를 용서했다는 후문이다.

 

사진 역사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도덕적인 부분과 사진의 순기능적 영향력.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 것보다 사진에 의해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린다는 논리.

사진가는 총으로 싸우지 않고 사진으로 싸운다는 사명감은 기자가 펜으로 싸운다는 철학과 함께 늘 논란의 중심이다.

하지만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릴리즈 한 것과 초상권 허락을 득하지 않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희생보다 값진 것인지는 사진가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실제로 사진가가 자살하고 비참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사실을 기록한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후보정을 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원본 사진에는 어머니의 왼쪽 손가락이 기둥을 잡고 있는데 이 손가락을 흐리게 지운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한 도로시아 랭의 사진.

 

 

플로렌스 톰슨의 사연이 알려지고 나서 전국에서 후원금이 3만 5천 달러나 도착하고 위로의 편지도 수천통이 도착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묘비에는 "이민자의 어머니 플로렌스 레오나 톰슨, 강인한 미국 모성애의 전설'이라고 적혔다.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같지만 한 가족이 이유 없이 겪은 40년의 고통, 사진을 찍는 사진가가 고민해봐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다.